우리의 문화와역사/역사 바로알기

군위 인각사

고양도깨비 2007. 3. 29. 10:09
삼국유사 흔적을 찾아서] (1) 군위 인각사
피고 지는 인간사에 석불은 말이 없고 강물만 흐느끼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썼다. 올해는 일연 스님이 태어난 지 800년이 되는 해. 삼국유사는 우리의 심성에 스며 있고,우리 국토 곳곳에 쓰여져 있다. 그 곳곳을 기행전문가 이재호씨의 손발과 눈을 빌려 찾아간다. 이재호씨는 현장의 생생한 느낌을 전하기 위해 눈비가 몰아쳐도 매주 현장을 찾아가 이 글을 쓸 작정이다.

 

 
# 내 마음 산천에 맡기고

길을 나섰다. 하늘은 잔뜩 긴장을 머금었고 부는 바람에 엷은 빗방울이 날린다. 경주를 출발한 시외버스는 건천,아화를 지나 포은 정몽주의 고향 영천을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풋풋한 봄 향기가 온 산천을 물들이고,아직 잎도 피지 못한 앙상한 나무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화사한 산벚꽃의 기막힌 조화가 내 가슴을 울리건만 마음은 왜 이리 무거울까. 이보다도 13세기 일연 스님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칼을 든 무인들이 권력을 잡았고,유라시아 온 대륙을 정복한 몽골은 고려도 쑥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삼국유사의 주 무대인 서라벌 장안은 약탈과 방화로 얼룩졌을 것이고,경주의 황룡사는 몇날 며칠을 불탔을 것이다. 하늘도 구슬피 울었을 것이다.

이런 쓰라린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한 일연 스님은 왕조사 중심의 삼국사기와는 다르게,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단군신화를 맨 처음 등장시키는 주체적 시각에서 삼국유사를 쓴 것이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 탄생한 지 800년. 무슨 인연이기에 그 흔적을 찾아 나는 길을 나선 것일까.

# 나그네 되어 인각사 가는 길

사람의 일생은 관 뚜껑을 덮었을 때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썼고 마지막 몇년을 지내면서 입적한 곳이 경북 군위 인각사라 그곳을 삼국유사의 흔적을 찾는 첫 기행지로 삼았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에 잠겨 있는데 큰 버스 안에는 까만 선글라스를 낀 젊은 기사와 의성에 친정어머님의 제사를 지내러 간다는 어느 잔잔한 여인과 나뿐이다.

화수삼거리에 내리니 인각사 가는 버스는 하루 몇 대 안되고 오후 2시에 버스가 있다기에 찻길을 피하고 논둑길을 걸어서 큰 하천을 끼고 걸었다. 백로 한 마리가 조용히 날고 청동오리가 푸드덕거린다. 수양버들이 연둣빛 푸름을 보내고 흰 백로는 나무에 앉아 떠날 줄을 모른다. 일연 스님도 분명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저 백로가 일연 스님인가,외롭게 걸어가는 내 모습인가. 흐르는 물은 아름다웠다. 한참 걷다가 소를 이루어 짙은 푸름을 머금고 있는 바위에 내려가 이 글 쓰고 있으니 바람이 어느새 더위를 실어 가 버렸다. 찰삭거리는 물소리에 장단을 맞춰 산새들이 지저귄다. 저만치 인각사가 보이는 길 옆에 210년 된 왕버들이 멋과 연륜을 풍기며 길손을 반겨주고 있다.

# 가슴에 안기는 '아! 인각사'

인각사는 길 옆 평지에 있으면서 건물의 짜임새는 적고,깊거나 고즈넉한 절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 감동받기가 힘들다. 그러나 저만치 버티고 있는 거대한 바위 절벽과 흘러내리는 산줄기,학소대 푸른 물결에 더하여 일연 스님의 기나긴 사연을 떠올릴 때 인각사는 우리 가슴에 안기는 것이다. 지금 인각사는 발굴한다고 온통 어수선하다.

잘 있던 극락전을 허물고 온 마당 전체를 발굴하니 또 얼마나 큰 건물을 지을까 두렵다.

나는 요사체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없던 국사전이 턱 버티고 있어 석탑에서 석불,부도탑,국사비로 이어지던 앙증한 시선은 사라졌다. 뒤돌아 찾아간 일연 스님의 덕을 찬양한 보각국사비도 깨어진 채로 처연하게 보호각 나무 창살 안에 갇혀 있었다. 마음에 드는 글씨를 떼어 갈아 마시면 과거급제한다는 허무맹랑한 미신을 믿은 우매한 옛 선비들 때문에 비는 많이 부서졌다. 우측 하단에 유려한 왕희지체의 몇 글자만이 옛 영광과 상처를 보여 주고 있다. 동쪽 언덕 산령각(산신각)에는 수염 허연 산신 할아버지 앞에 호랑이가 입 벌리고 엉거주춤 앉아 있다. 산신각 옆에 깨어진 기와 조각을 차곡차곡 싸놓은 것이 삼국유사의 책장처럼 잔잔한 아름다운을 던져주는데 여리고 흐느적 피어버린 진달래의 울림에 산새들이 구슬픈 봄의 노래를 하고 있었다.

절 입구에는 일연찬가비다 하면서 비석 앞뒤에 새긴 이름이 빼곡하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함부로 새기지 않는데…. 뭉그러진 석불이 말없이 침묵으로 앉았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고



문정희 시인은 뭉그러진 석불을 보고 노래했었다. 인각사를 뒤로하고 길 건너 거대한 바위 절벽 학소대로 갔다. 사과나무는 꿈틀거리고 수양버들은 고운 색을 입고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물은 여전히 푸른 빛 가슴시리게 사연을 흘리고,바람에 물결이 일렁이는데 '인간사 꿈결인 줄 내 이제 알았노라'던 일연 스님의 시구가 낙엽되어 떠내려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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