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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왕의 슬픈 사랑

고양도깨비 2007. 3. 28. 18:53
(3) 흥덕왕의 슬픈 사랑
솔바람은 다시 천년을 노래하네…

이 세상에 사랑만큼 오묘하고 가슴 벅찬 것이 있을까. 반면에 가장 어려운 것도 사랑이다. 정답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그것이 또한 사랑의 매력인지 모르겠다. 하늘도 그 매력을 질투하는지 너무 사이가 좋으면 한 사람을 먼저 데리고 가버리곤 한다. 죽음이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사람은 살아 있어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것이다.

 

 
신라 42대 흥덕왕은 왕이 된 지 불과 2개월 만에 사랑했던 장화왕비를 잃는다. 슬픔에 젖어있는 왕을 보다 못한 신하들은 새 왕비를 맞이하도록 청해도 흥덕왕은 모두 거절하면서 "새도 짝을 잃으면 슬피 우짖는데 하물며 훌륭한 배필을 잃고서 어찌 차마 무정하게도 다시 아내를 맞이 하겠는가"하였던 왕이다.

삼국유사는 흥덕왕의 슬픔을 극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당나라에 갔던 사신이 앵무새 한 쌍을 갖고 왔다. 얼마 후에 암컷 앵무새가 죽자 수컷이 슬피 울어 왕은 거울을 달아 주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제 짝인 줄 알고 열심히 거울을 쪼다가 제 모습인 줄 알고는 지쳐 죽었다." 흥덕왕의 사랑을 비유한 것인데 그의 맑고 순수한 사랑이 가슴을 울린다.

# 숨이 막힐 듯한 솔밭

경주서 시내버스로 안강을 거쳐 다시 택시를 타고 흥덕왕릉 입구에 내렸다. 부~웅 하는 기계음이 사라지자 갑자기 태고의 적막이 업습해 왔다. 밀밭 보리밭은 너울너울 푸름으로 흔들리고 허리 굽은 할머니가 골목길을 돌아 사라지는 모습은 눈물나는 정겨움이었다.

솔밭에 들어서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슴 벅차게…,얼마나 많이 왔던가 이곳을. 감성이 아무리 무딘 사람일지라도 여기에 와서 신음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은 이제껏 아무도 없었다. 이 솔밭에 와서 여성학자 정재인씨는 너무 좋아 "미치겠네,미치겠네"를 연발했고,연세대 교수들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과 첼리스트 양성원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솔숲을 한참 지나면 완벽한 왕릉이 당당히 버티고 있다. 좌,우에는 서역인 얼굴을 한 문·무인상이 순박하게 도열해 있고 왕릉 옆에는 네 마리 사자가,그 안에는 41개의 돌 난간이,마지막 무덤의 둘레돌에는 12지신상이 왕을 지키고 있다.

왼쪽 모퉁이에는 거대한 거북이가 비신과 이수도 없이 처연하게 있는데 거북이는 처참한 파괴의 흔적으로 인해 마치 미완성같이 보인다. 아쉬운 것은 왕릉 주위에 대규모 축사가 많아 북풍과 동풍이 불면 가축 분뇨냄새가 바람 따라 흘러 온다는 것이다.

# 비극 간직한 왕릉들

지극한 슬픔도,말 못할 비극도 세월이 지나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인간이 스스로 극복하지 않더라도 세월의 연륜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흔히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릉을 인도의 타지마할 궁전으로 꼽고,북한에서는 노국공주와 합장한 개성의 공민왕릉을 꼽는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이 흥덕왕릉을 아름다운 왕릉으로 더한다.

아름다운 왕릉을 남긴 세 왕의 공통점은 사랑했던 왕비가 먼저 죽었고,왕비가 죽은 뒤에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정치가 혼란에 빠졌고,그러다가 스스로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타지마할 궁전은 아기를 낳다 죽은 왕비 뭄타르마할을 위해 샤자한 왕이 22년에 걸쳐 완성하지만 국고를 탕진했다는 이유로 아들에게 폐위를 당해 7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쓸쓸히 죽었고,공민왕도 원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자주 노선을 걸었지만 왕비 노국공주가 아기를 낳다가 죽자 모든 정사를 신돈에게 맡기고 결국 비참하게 칼을 맞아 죽는다.

이 흥덕왕도 왕비가 죽자 시름시름 병이 들어 왕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죽었다. 다만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로 임명하여 해상왕국을 구가하게 했고 김대렴이 차씨를 갖고 와 지리산 일대에 차 재배가 융성하였다. 그래도 죽으면서 "사랑하는 왕비 곁에 묻어다오"라는 말을 남겼기에 왕비와 함께 묻히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솔숲의 소나무 두 그루는 아름답게 부둥켜안고 있었구나.

# 슬픔은 아름답게 피어나고

왕릉 주위를 찬찬히 살펴 보았다. 핑클파마한 왼쪽 사자는 입을 벌리고 서산의 햇빛을 받아 먹고 있었고 오른쪽 사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솔숲에 어린 그림자를 머금고 있었다.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쑥 한 바구니 뜯어다 왕릉 앞에 앉아서 가리고 있던 두 아주머니가 불쑥 말을 붙인다. "저것이 호랑이입니까" "사자입니다." "그런데 사자가 왜 예쁜 강아지 같이 생겼노 얄구지라."

쑥 캐는 아주머니들이 간 뒤 다시 침묵이 흘렀다.

발이 땅속에 묻힌 채 불만도 없이 그저 어리숙하고 꺼벙해 보이는 오른쪽 사자 한 마리에게 유독 정이 많이 가는 이유는 왜 일까. 잘난 다른 사자들은 뽐내고 있지만 그 어리숙한 사자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 모퉁이에서 새 소리,바람 소리를 벗삼아 묵묵히,그러나 옹골차게 서 있는 듯하다. 나는 더욱 정이 가서 등에 앉아서 어루만지는 정을 보내주었다.

사자 앞에 앉아서 침묵의 대화를 하면서 이 글 적고 있는데 둘레돌에 새겨진,눈이 말똥거리는 영리한 닭이 내 생각에 맞장구를 치는지 나비가 짝을 지어 이리저리 날고 있다. 아! 장화왕비와 흥덕왕의 혼령인가. 저만치에서 산복숭아꽃도 장단 맞춰 사랑을 보내고 있었다.

뻐꾸기가 우는데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여기가 속세임을 알려준다. 언제 한번 진실한 뜨거운 사랑을 해 보았느냐. 세월은 행복을 기다려 주지 않고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솔바람은 끊임없이 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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