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퇴근시간이면 지나치던 길이었는데도 오늘 눈여겨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회사의 주차장과 앞마당사이에 말쑥하게 머리를 깎은 울타리를 보는 순간, 작년 봄날 활짝 핀 꽃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가지마다 눈물처럼 맺힌 하얀 꽃들, 찬바람 몰아치는 한겨울이라 지금은 꽃 대신 까만 열매가 무리를 지어 달려있지만 난 그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나무들이 쥐똥나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습니다.
왜 쥐똥나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요. 많고 많은 이름 중에 거부감이 들게 이름을 지은 것도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열매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환약 같은 새까만 열매들이 꼭 쥐똥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재미삼아 열매를 까 보았더니 그 안에 딱딱한 씨앗이 들어있고 물기는 다 빠져 살집은 거의 말라붙기 일보직전입니다.
쥐똥나무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봄이 오면 푸릇푸릇한 잎들을 튀울 준비를 하며 혹한의 추위와 눈보라를 견디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눈만 마주치면 추위에 얼어붙은 가지들이 손을 들고 우수수 일어서던 울타리, 쥐새끼 한 놈이 푸른 잎새로 덮힌 울타리를 뚫고 달아나던 지난 여름철의 환영이 영 지워지질 않습니다.
누가 뭐래도 쥐똥이라는 이름이 딱 들어맞는 나무는 이 나무 밖에 없을 겁니다. 다른 나무들의 열매는 다 떨어져 흔적조차 없는데 쥐똥 열매를 달고 있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줍니다. 혹한의 겨울추위에도 떨어지지 않고 역경과 끈기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는 이 나무를 주목해 주십시오.
쥐똥나무 열매는 한방에서 수납과라고 하여 약재로 사용하고 있으며 강장과 지혈에 좋습니다. 변산에서는 남정목과 여정목이 있는데 남정목은 남자의 정력을 좋게 하는 나무라하여 물쪼가리나무나 조갈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여정목은 여자를 정숙하게 하는 나무란 뜻인데 광나무라고 합니다. 쓸모없을 것 같은 쥐똥나무 열매도 당뇨나 고혈압, 이명증, 양기부족에는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원래는 키가 큰 나무인데 울타리 대용으로 늘 머리를 짧게 잘라 단키가 되었습니다. 보잘것 없고 이름조차 더러운 쥐똥나무에게도 가슴을 설레이는 시가 있답니다.
쥐똥나무의 꽃은 쥐똥처럼 생기지 않았다//....../열매가 바로 꽃의 원전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아니/....../꽃은 꽃으로서 이미 열매다, 꽃으로서/하나의 완성된 몸, 완결된 별개의 서사다/종 모양의 앙증스런 꽃잎과 꽃받침/더듬이처럼 돋은 수술 따위로/꽃속에 함몰된 열매의 예감을 말하지 마라/이 꽃떨기가 지닌 뿌윰한 반그늘과 고즈넉한 향기는 단순히/세상을 향한 정직한 인사일 뿐/다가올 무엇의 근거가 아니다//......//쥐똥나무꽃은 꿈에도 쥐똥나무의 열매가 아니다"
쥐똥나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