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따라 색깔을 갈아입는 꽃이나 열매의 이름은 어떻게 붙일까요. 그 모양새나 빛깔, 향기 등 여러 여건을 고려하여 이름을 붙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간혹 그 여건에 맞지 않는 이름이 있어 의아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붙인 이름인지 모를 경우엔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합니다. 누가 봐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생소한 이름을 가진 나무, 그것이 바로 좀작살나무입니다.
|
|
▲ 보랏빛 열매들이 오복이 매달려 있다 |
|
|
|
나는 그 나무를 곁에 두고도 오랫동안 이름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늘 오며가며 마주치는 회사의 측백나무 울타리 속에서 옥구슬 같은 열매를 오복이 매달고 있는 나무에 사로잡혀 한참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열매가 너무 곱고 화사해 늘 내 마음 속에서 옥구슬처럼 빛이 났습니다. 저걸 떼어다가 멋깨나 부리는 아낙의 귀고리로 달아줬으면 귀티가 날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
▲ 가운데 가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갈라진 두 가지가 삼지창을 닮았다 |
|
|
| 그러다가 어느 날 인터넷에서 그 나무를 발견하고 천하를 얻은 듯이 기뻤습니다. 좀작살나무, 열매 모양과는 전혀 딴판인 이름, 왜 하필 작살내고 만다는 절망적인 이름이 붙었을까요.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무기인 작살 말이지요. 나뭇가지가 그 모양을 닮았답니다. 원래의 가지를 가운데로 해서 양쪽으로 두 개씩 갈라져 나온 나뭇가지가 어김없이 작살모양을 한답니다. 그것도 가지가 셋으로 갈라진 삼지창이랍니다.
|
|
▲ 보랏빛 열매가 가을을 더 곱게 색칠한다 |
|
|
| 그런 이름 말고 보랏빛 구슬을 뜻하는 한자어 '자주(紫珠)'가 더 잘 어울리고 향기도 멀리 퍼져갈듯 한데 왜 하필 잔인한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여간해서 잊혀지지 않더군요. 나는 며칠 후 다시 측백나무 울타리로 가서 좀작살나무와 만났습니다.
|
|
▲ 아래로 늘어뜨린 낭창낭창한 가지가 꺾여질듯 애처롭다 |
|
|
| 안 그래도 낭창낭창한 가지가 오복이 매달린 열매로 인해 꺾여질듯 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지간히 익었는지 열매를 살짝 만져도 똑똑 잘도 떨어졌습니다. 열매들은 각자 머물다 간 자리가 아쉬운 듯 꽃받침에 선명한 자국을 남겨놓았습니다.
나뭇가지를 조금만 흔들어도 향기 또한 상큼 했습니다. 좀작살나무 열매는 새들도 아주 즐겨 찾는다고 하더군요.
|
|
▲ 포도처럼 생긴 열매가 신맛을 돋운다 |
|
|
| 그래서 새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들어 낭랑한 노래를 부르는가 싶습니다. 측백나무에 뭘 먹을 게 있다고 죽기 살기로 깃을 접나 했더니 바로 좀작살나무의 유혹 때문이란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닮은 족속들이 많은 법, 좀작살나무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상일에 잘 속는 사람이라면 그 외모와 혈통이 아주 닮은 작살나무와의 구별이 쉽지 않을 겁니다.
|
|
▲ 농익은 열매들이 떨어져 나간 자리가 선명하다 |
|
|
| 그러나 아무리 닮았어도 관심있게 들여다보면 분명 다른 점을 발견할겁니다. 우선 잎으로 구분을 합니다. 좀작살나무는 잎의 가장자리 반 이상만 톱니모양이고 열매도 작습니다. 그 대신 작살나무는 잎의 가장자리가 전부 톱니모양이고 좀작살나무보다 열매가 조금 굵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작살나무의 변종으로 열매가 우윳빛처럼 흰 흰작살나무도 있는데 좀작살나무와 적절히 섞어 심으면 훌륭한 조경수로 손색이 없다고 합니다. 잎이나 꽃모양에 따라 달리 부르기도 합니다. 꽃 전체에 털이 없는 것을 민작살나무, 꽃이 크고 가지가 굵으며 바닷가에서 자라는 왕작살나무, 잎의 길이가 3cm 이하인 송금나무가 있지만 여하튼 모두 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열매만은 자랑할 만합니다. 보랏빛 구슬을 터질듯 매달고 가을을 손짓하는 좀작살나무 옆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짙은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
|
▲ 송알송알 맺은 열매들이 가을을 손짓한다 |
|
|
| 일부러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뒷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눈길 닿는 측백나무 울타리에 좀작살나무는 낭창낭창 가지를 늘어뜨리고 터질듯 열매를 매달고 있습니다. 도심이 아무리 황량하다고 해도 좀작살나무와 같은 나무만 있으면 얼마든지 눈길을 시원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연히 찾아낸 잔인한 이름, 그 이름과는 정반대로 보랏빛구술을 영롱하게 매달고 있는 좀작살나무가 휘늘어져 있는 도심의 가을이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