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꽃과 식물 모음집

산수유(펌)

고양도깨비 2007. 3. 27. 02:26

앵두꽃이 피었다 일러라 살구꽃이 피었다 일러라

또 복사꽃도 피었다 일러라

할머니 마루 끝에 나앉아 무연히 앞산을 보신다

등이 간지러운지 자꾸만 등을 긁어신다

올해는 철이 일들었나 보다라고 말하는 사이

그 앞산에도 진달래꽃 분홍 불이 붙었다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즉한 뱃고동이 운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울고 야야,주꾸미

배가 들었구나,할머니 쩝쩝 입맛을 다신다

빙초산 맛이 입에 들척지근하고 새콤한 것이

달기가 햇뻐꾸기 소리 같다


아버지 주꾸미 한 뭇을 사오셨다 어머니 고추장

된장을 버무려 또 부뚜막의 왱병을 기울이신다

주꾸미 대가리를 씹을 때마다 톡톡 알이 터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아버지 하신 말씀,

니 할매는 이 맛을 두고 어찌 갔을거나


환장한 환장한 봄날이었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오도방정을 떨고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즉한 뱃고동이 울었다.

                                                   

 


송수권의 “봄날”처럼 지금 남녘에는 다닥다닥 꽃망울 터지는 소리 가득할 겁니다. 살갗이 쩍쩍 터지는 풍설에 몸서리치다가 문득 봄을 맞게 되니 산야는 아지랑이로 어지러울 겁니다. 너무 갑자기 닥친 일이라 마음이 온통 꽃물이 들어 환장할 봄날입니다. 살아날 것 같지 않던 봄은 지독한 전염성이 있는지 산마루를 넘고 철로를 타고 와 짐을 부리 듯 서서히 초록의 짐들을 부려놓기 시작합니다. 정말 눈 깜짝할 순간입니다.

겨울을 못 잊어 햇솜 같은 눈발을 펑펑 흩날리던 며칠 전의 꽃샘추위에 아직도 마음이 얼어붙어 싱숭생숭한데 햇살 몇 줌 비쳤다고 그새 햇순을 쏙쏙 뽑아 올리고 있으니 여자 같은 봄의 변덕을 어찌 알겠습니까. 정말 봄이란 여자의 마음을 닮았는지도 모릅니다.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큰소리를 땅땅 치던 나의 배포도 쏙 들어가 말이 아닙니다. 어찌해야 될까요. 보기 좋게 한 약속은 틀리고 길가마다 초록의 망울들이 톡톡 불거져 남자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으니 대체 어찌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고개를 돌려버릴 수도 없는 일이 아닙니다. 따사로운 얼굴로 유혹을 하는 데야 견뎌낼 장사가 어디 있습니까.

 

출근하다가 갑작스레 보았던 산수유의 노란 꽃망울이 눈앞에 아른거려 견딜 수가 없습니다.  늘 지나치던 길이었는데도 그 꽃들을 보지 못한 것은 아마 여자 같은 봄의 변덕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나의 불찰인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부터 기세등등하게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와 동백의 화신이 티브이를 타고 신문을 타고 이곳까지 그 향기를 풍겨도 묵묵부답 이더니만 산수유 몇 그루가 가지째 노란 물이 들어 찢어질 것 같습니다. 롯데백화점 지나 서부 농협 앞에는 봄볕을 쬐는 나무들이 즐비했는데 그 중에서도 산수유가 가장 눈에 들었습니다. 샛노란 빛깔을 물고 있어 그런지 버스의 차창 너머로 비친 꽃망울들이 눈이 부시도록 싱그러웠습니다. 묵은 껍질을 뚫고 타닥타닥 터진 꽃망울들이 내 몸에서도 스멀스멀 봄기운을 솟구치게 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은 차고 음습한 겨울 기운에 젖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노란 빛깔에 취해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근무하는 동안 내내 노란 꽃들이 눈에 밟혀 아른거렸습니다. 혹시 변고라도 생겨 꽃망울들이 왕창 사라지지는 않았을까. 점심을 후딱 먹고 서부농협 앞으로 가는 길에 대전 시청 조경수 속에서 산수유 몇 그루를 찾아냈습니다. 타닥타닥 터진 꽃망울들이 노란 물을 퍼질러 놓고 쏟아지는 햇살에 자울 자울 졸고 있습니다. 산수유는 꽃망울을 조금씩 틔운 많은 나무들에 둘러싸여 맘껏 봄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산수유는 맨 먼저 봄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사로 손꼽힙니다. 남녘땅에서는 매화와 동백이 선수다툼을 벌이지만 난 단연코 산수유를 전령사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매화와 동백은 그 정체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습니다.  봄꽃인지 겨울꽃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해서 확실히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동백은 눈이 햇솜처럼 쌓인 나뭇가지에서도 붉은 핏기를 머금는가 하면 매화도 눈 속을 뚫고 피는 ‘설중매’가 있듯이 하나같이 겨울을 좋아해 대놓고  봄꽃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봄날에 즐거움을 누리니 봄꽃이라고 하지만 그 마음은 이미 겨울을 향해있으니 순수한 봄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대전을 놓고 따지고 들더라도 그 이유를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대전엔 동백꽃이 벙글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꽃잎을 열기는커녕 딱딱한 꽃받침에 둘러싸여 붉은 핏기만 머금은 상태입니다. 작년엔 눈발 몰아치는 겨울에도 꽃잎을 열어 그나마 치면 치례를 했지만 올해는 소식조차 없어 감감합니다. 물론 성질 급한 매화 몇 놈이 다행히도 꽃을 터뜨려 체면을 살려주기는 했지만 그것 가지고 남의 이목을 끌기에는 어림없습니다. 그러니 단연 산수유가 으뜸입니다. 서로 약속을 한 듯 허공을 노랗게 물들인 꽃망울을 보고 누군들 감탄하지 않겠습니까. 겨울이 달아나는 한쪽 길목으로 급행열차처럼 달려오는 화신들을 제치고 맨 먼저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 남녘에서 대전까지 그 먼 길을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헉헉 숨을 몰아치는 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그렇게 달려온 이유가 있을 법도 합니다.  가지가 찢어지도록 꽃망울을 터뜨린 남녘에서 죽기 살기로 꽃 자랑을 해본들 통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나마 아직 꽃 소식이 잠잠한 대전에 와서 꽃자랑을 해야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습니다. 그걸 보면 산수유는 참 동작이 빠른 놈입니다. 마라톤 하듯 끈덕지게 달려와 사람들의 눈을 홀리는 걸 보면 자랑할 만한 것이 수두룩한 모양입니다. 송수권의 “봄날”처럼 주꾸미 한 접시를 갖다놓고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싶어집니다. 앵두꽃과 살구꽃에 휩싸이고 앞산이 터지도록 불붙은 진달래 향기에 숨 막혀 술 몇 잔 돌리다보면 황량한 사내의 텅 빈 가슴에도 붉은 물이 번지겠지요. 그러다보면 술잔 속에는 산수유 노란꽃물이 짓물러 붉은 열매로 변하는 모습이 보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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