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꽃과 식물 모음집

돌단풍(펌)

고양도깨비 2007. 3. 27. 02:21
 

 가을이란 말만 들어도 사람들의 가슴이 설레는 것은 단풍잎의 붉은 빛깔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푸른 것들은 낙엽이 되어 모조리 다 떨어질 때에도  꽃처럼 혼자 붉어서 온 산을 뒤덮는 단풍잎의 열정이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지도 모릅니다. 붉은 빛깔을 취함으로써 떨어지지 않는 나무, 더 붉은 빛깔을 띠면 자신도 모르게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될 터인데도 더 이상 속도를 내지 않고 그대로의 빛깔을 유지하고 있는 걸 봐도 단풍나무는 계절을 맞춰 사는 현명한 나무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단풍나무는 가을나무의 으뜸이 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을이 아닌데도 서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묘한 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돌단풍입니다. 평소에 난 돌단풍이 단풍나무와 이웃사촌쯤 되는 나무로 알고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야 내가 알고 있는 상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돌단풍은 나무가 아니라 다년생 숙근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겨울 동안 말라죽지 않고 남아있는 뿌리가 성장을 하여 새 순을 피워 올리는 초본식물이란 것 입니다. 뿌리에서  쑥 올라온 고사리같은 둥글고 연한 줄기 끝에 팝콘같은 자잘한 꽃들이 뭉쳐 있었습니다. 언뜻 보면 단풍나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잎을 보면 영락없는 단풍잎입니다. 몇 개 갈라진 잎이 붉은 빛이 도는 걸 보면 어디서 단풍잎 하나가 날아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돌단풍이란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돌단풍은 깊고 험한 계곡의 바위나 돌 틈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돌단풍이란 이름 말고도 부처손도 있고 나리처럼 곱고 예쁜 꽃이 돌 틈에서 핀다고 해서 돌나리란 이름도 있습니다. 그러나 돌단풍이란 이름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름도 예쁘고 가을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줘서 그런 면도 있지만 바위나 돌 틈에 내린 뿌리에서 줄기를 뻗어 꽃을 피우는 그 억척스런 맛에 더 이끌린 탓이기도 합니다. 바위나 돌 틈을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우는 돌단풍을 생각하니 문득 틈이란 단어 생각이 낫습니다. 글자그대로 틈이란 것은 상당히 좁은 공간을 의미합니다. 숨 막히는 곳에 갇혀 살다가 틈이라도 있으면 도망치려고 하는 속성을 가진 생명들처럼 틈은 해방을 위한 소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시라도 틈만 있으면 모두들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들어 제 아까운 생명을 소신공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보나마나 한시도 쉬지 않고 조여 오는 삶 때문입니다. 그래도 틈만 있어 나갈 여력이라도 있다면 덜 할 텐데 틈조차 꽉 막힌 삶을 살다보니 절망을 하고 절망에 지쳐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돌단풍은 대단한 식물입니다. 육중하게 밀어닥치는 바위나 돌의 틈도 이겨내고 줄기를 뻗어 올려 자잘한 꽃을 피웠다는 것은 끈기이며 용기인 동시에 성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줄기를 잘라 흙속에 꽃아 놓기만 해도 불타오르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모두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성질 같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돌단풍도 역경을 딛고 환한 꽃을 피우는데 사람들이 돌단풍보다 못한 존재가 돼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생각만큼 돌단풍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흔한 꽃말도 없고 전설도 없는걸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탈수록 꽃말이나 전설도 붙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면 돌단풍은 아직 깊은 산의 바위틈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존재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런 성질을 가진 돌단풍이 화단에서 살기가 싫은지 그 옆 분수대의 돌 틈에서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마치 덩치와 키를 줄인 단풍나무 분재처럼 붉게 잎을 물들이고 다닥다닥 꽃망울이 터진 꽃들을 보는 것으로도 즐겁습니다. 마침 도로변에는 노동자들의 시위장면이 한창입니다. 우렁찬 북과 괭꽈리 소리가 부와 권력으로 단단하게 둘러쳐진 철옹성을 깨뜨리려는 소리 같기도 해서 가슴이 뭉클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노동자들은 돌단풍을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위틈을 비집고 나오는 그 힘으로 잎을 불게 물들이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갑갑한 벽을 허물고 환한 희망을 맞이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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