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잘 드는 도로변이나 산길을 걷다 보면 풀 속에 숨어 파르르 떠는 꽃이 있습니다. 넓은 풀밭에서 홀로 외롭게 피어 향수를 몰고 온 꽃, 진한 꽃 색깔이 아니라면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로 모양이 작은 꽃, 제비꽃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 핀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비가 날아올 무렵 피는 꽃이 한 두 개 일까 마는 혹시 이 꽃이 제비를 닮아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언뜻 보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에 자주색 꽃잎을 앙증맞게 얹고 파르르 떠는 그 형체를 보니 오래전 고향을 떠난 제비 생각이 물씬 피어올랐습니다. 전깃줄에 쪼르르 한 줄로 앉아 날렵한 몸매와 꽁지를 까닥거리던 제비들, 소나기 그친 뒤 빗방울 조롱조롱 매달린 전깃줄위에서 뭐가 그리 좋은지 지지배배하며 앞산을 쳐다보던 제비들, 그 제비들이 내 마음 속에 떠올라 진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 제비는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많던 제비들이 강남으로 날아가 돌아오지 않는 건 아마 농촌을 정감조차 없는 불모의 땅으로 인식해서 그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요즘 농촌 현실을 보면 그런 생각이 퍼뜩 스치기도 합니다. 뼈가 부서질 정도로 농사를 지어도 이윤 한 푼 남지 않는 현실에서 어디 마음 편하게 정감 있는 노래를 불러주겠습니까. 전깃줄에 앉아 꽁지만 까닥거리고 노래만 불러주어도 쳐다만 봐주던 그 옛날 농촌사람들의 까만 눈동자들은 이젠 실종된 지 오래입니다. 현실을 쫒아 고달프게 뛰어다니다 보니 집에 제비집 한 채 지을만한 여력을 주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비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강남에 눌러 붙어 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월은 따사로운 정도 있는지 제비를 보내주지 않는 대신에 제비꽃을 피워주었습니다. 제비꽃은 이름도 몇 개 될 정도로 아주 다양합니다.
춘궁기 때 오랑캐들이 쳐들어 올 때 피어난다 해서 오랑캐꽃, 꽃 두 개가 합치면 씨름하는 자세라 해서 씨름꽃, 병아리처럼 귀엽다고 해서 병아리꽃, 나물로 무쳐 먹는다고 해서 외나물꽃, 갈고리 형상의 제비꽃 꼭지를 걸고 서로 잡아당겨 꽃 싸움을 버린다고 해서 장수꽃이라고 부를 정도로 제비꽃은 숱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제비꽃을 꺾어 여자 친구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던 철없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만약 여자 친구가 “사랑, 나를 생각해주세요” 라는 제비꽃의 꽃말을 아는 똑똑한 친구였다면 아마 제비꽃을 받아 개천 둑에 던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자 친구는 지금 멀리 떨어져 소식을 알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 때 제비꽃을 선물했다면 반응이 어떻게 나왔을까 무척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있는 것 같은 제비꽃도 실은 셀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서울제비꽃, 남산 제비꽃, 간도제비꽃, 졸망제 제비꽃, 태백제비꽃, 광릉제비꽃등 자생종만 60여종이 흩어져 있다고 하니 단순한 것만 같은 제비꽃의 세계도 인간세상만치 대단히 복잡다단합니다.
제비꽃은 그리스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국화입니다.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제비꽃에 대한 전설도 내려옵니다.
‘아폴로라“는 태양의 신이 있었습니다. 그 신은 이아라는 이름을 가진 미모의 소녀를 아주 짝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아“가 양치기 소년 ”아치스“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 깊고 애절한 사랑에 질투를 느껴 그만 이아를 꽃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그 꽃이 바로 제비꽃이라는 것입니다. 작디작은 제비꽃이지만 꽃말과 전설이 있는 걸 보면 사람들한테 많은 사랑을 받는 꽃이라 생각이 듭니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아껴 둔 나의 향기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웃을 수 있고
감추어진 향기도
향기인 것을 압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내 작은 가슴속엔
하늘이 출렁일 수 있고
내가 앉은 이 세상은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담담한 세월을
뜨겁게 안고 사는 나는
가장 작은 꽃이지만
가장 큰 기쁨을 키워 드리는
사랑꽃이 되겠습니다
소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철없는 여자애들에겐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아마 수줍어 할 줄 하는 제비꽃의 “겸양”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이지 볕이 참 좋은 봄날입니다. 수많은 꽃들이 타닥타닥 피어나는 와중에서도 제비꽃도 살며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앙증맞은 꽃잎을 파르르 떠는 제비꽃을 허리를 굽혀 다시 들여다봅니다. 보면 볼 수록 아득한 옛날 시골의 향수가 스멀스멀 피어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