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꽃과 식물 모음집

광대나물(펌)

고양도깨비 2007. 3. 27. 02:18
 

 

지지리도 못살던 시절을 거쳐 온 사람들이라면 아마 서커스단을 떠올릴 것이다. 한 군데 붙박혀 있지 못하고 낙엽처럼 거리를 떠돌았던 부초 같은 인생들은 서커스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 역활을 했다. 서커스단 앞에 가면 늘 광대가 문 앞에서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고깔을 눌러쓰고 알록달록 분가루를 칠한 요상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된 환경 속에서도 온 육신을 쥐어짜 유감없이 끼를 발산하던 광대들, 그런 끼 조차도 천한 직업이란 굴레 속에 가둬버려야 했던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웬지 가슴이 찡할 때가 있다. 그렇게 서러움을 받으면서도 밤낮으로 춤추며 노래했던 광대들이 지금은 다 어디로 흩어졌는지 그 종적이 묘연하다. 급속도로 발달한 영상기술로 브라운관이나 은막의 스타로 거듭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음지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갔다.

 

아내와 함께 처가에 들렀다가  밭에서 쑥을 캐는 날, 밭머리에 오복히 모인 광대들을 보았다. 대접이 소홀하다며 술렁술렁 시위를 벌이는 광대들, 고깔같은 긴 꽃관을 눌러 쓰고 초록색 옷을 바람에 파르르 떠는 것이 꼭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다.
광대나물은 영락없이 광대를 닮았다. 고깔처럼 솟은 길쭉한 분홍 꽃관하며 주름투성이 잎이 장식처럼 줄기를 빙 둘러싸고 층층히 붙어있는 걸 봐도 영락없는 광대의 모습이다. 그러나 아내는 광대나물엔 별 관심조차 없다. 그냥 쭈그려 앉아 쑥만 뜯었다. 여태껏 시골사람들이 광대나물을 나물이라며 뜯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까닭이다.
들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나물 중에서 난 아이들에게 광대나물을 적극 추천해 주고 싶다. 그것을 많이 먹으면 혹시라도 예술적 재능이 다분한 끼 넘치는 아이로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거금을 들여 예능학원을 찾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런 허황된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 평소에는 별 관심 없이 지나쳤던 들꽃들도 이렇게 무서운 지혜가 숨어있다니 들꽃 한 포기가 왜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어 좋다.
무리지어 피는 광대나물은 종자를 퍼뜨리는 방법이 아주 특이하다. 꽃들이 씨앗을 이용해 종자를 퍼뜨리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지만 광대나물은 개미를 이용한다. 광대나물의 씨앗엔 개미가 좋아하는 입자가 붙어있는데 그것을 물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씨앗을 떨어뜨려 종자를 멀리까지 퍼뜨린다고 한다. 아내가 쑥을 뜯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난 오랜 동안 광대나물에 눈길을 돌렸다. 심심한 차에 길쭉한 분홍 꽃관을 찢어 그 속에 들어있던 수술을 장난삼아 뺐더니, 수술이 끊기지 않고 깔끔하게 쏙 빠져 올라오는 것이 꼭 코딱지처럼 생겼다. 그래서 코딱지 나물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그 외에 등롱초, 풍잔, 전주연. 보개초라는 이름도 있다. 부러진 뼈가 잘 붙는다고 해서 접골초라고도 하는데 타박상이나 코피 지혈제로도 사용한다. 이렇게 여러모로 쓰이는 광대나물이 신통하고 귀여워 불현듯 우리 집 화단에 옮겨 심을 궁리를 했다.
집으로 옮기려고 꽃망울 몇 개 붙어있는 광대나물을 쏙 뽑았더니 원줄기 하나에서 수없이 가지를 친 줄기들이 한 움큼 올라왔다. 그 많은 줄기마다 핀 꽃들이 밭가를 빨갛게 수놓고 있으니 쳐다만 보아도 꽃물결처럼 어지럽다. 광대나물을 신문지에 조심스레 싸면서도 공해가 심한 도회의 화단에서 아무 탈 없이 꽃을 활짝 터뜨릴 수 있을지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

 


 


말하는 광대가 밤새 말을 씹었다
말들이 끝나지 않으려고 서로 얽혔다

눈 몇 송이
바람에 뜨고

수레가 지날 때마다
길들이 끝나지 않으려고 서로 얽혔다
밤새 수레가 지나가고
수레가 갈 때마다
가슴이 패었다
가슴과 가슴이 끝나지 않으려고 서로 얽혔다
가슴의 흙이 짓이겨졌다

눈 몇 송이
바람에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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