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꽃과 식물 모음집

박태기 나무(펌)

고양도깨비 2007. 3. 27. 02:16
 

이름도 참 기이하다.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 듣기에도 거북한 박태기나무라고 했을까. 원래 꽃이란 들어서 기분 좋고 향기 물씬 풍기는 그 이름을 붙이는 게 상식이지만 이 나무만은 그런 이름이 아예 체질에 맞지 않는 듯하다. 남의 집 담장 옆이나 공원 한쪽에서 온 몸에 빨간 빛깔을 뿜으면서 꼿꼿이 서있는 나무, 처음에 난 그것이 꽃인 줄 몰랐다. 어 찌 보면 나뭇가지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듯하고 어찌 보면 누군가 나뭇가지마다 빨갛게 물감을 뿌린 듯 한데 옆에서 보니 온통 꽃망울 투성이었다. 그 모양이 꼭  밥풀 같았다. 그것도 빨간 물감을 들인 밥풀들이 오복이 뭉쳐 가지째 달라붙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름을 붙인 게 박태기였다. 우리 고향에서는 밥풀을 밥띠기라고 불렀는데 그 발음이 비슷한 걸로 보아 밥띠기가 박태기로 변한 것이 틀림없었다.          

 

 

 

북쪽에서는 박태기나무를 구슬처럼 곱다고 해서 구슬꽃이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니 빨간 구슬이 영롱히 빛나는 것 같기도 하다. 박태기나무보다 구슬꽃이 더 정감이 가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꽃을 두고서도 이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만들어내는 북쪽에 더 호감이 갔지만 내가 북한 사람 같았으면 차라리 밥풀꽃이라 불러주고 싶다. 밥풀꽃, 먹을 양식이 없어 나무껍질까지 벗겨 먹을 정도로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이고 보면 밥풀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허기지면 박태기나무 꽃으로 요기를 할 수 있게 말이다. 그러나 먹을 수 없는 게 탈이다. 꽃에 독이 있어 많이 먹으면 치명적이다. 밥풀꽃이라 부르지 않는 것도 천만다행이다 싶다. 꽃을 훑어 먹고 죽는 것보다 허덕이면서도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사람이 아니던가.

박태기나무는 유다목이란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그리스도를 배반한 유다가 이 나무에 목을 매달라 죽었다고 해서 유다목이라 불렀다. 그런 생각을 하니 빨간 꽃망울들이 엉겨 붙은 피처럼 보여 섬뜩하기 까지 하다. 박태기나무는 정원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하지만 유다목이라 생각하니 그런 마음이 쏙 들어간다.

전번 주말 옥천의 이원 묘목장에 들러 박태기나무를 구입하려고 한 적이 있다. 마침 박태기나무가 없다고 해서 말았지만 유다가 목매죽은 나무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사려고 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좋은 점도 있을 것 같다. 신자인 나 자신이 박태기 나무를 옆에 두고 유대의 교훈을 마음에 새겨 믿음을 더욱 돈독히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 같다. 동네 골목을 지나다가 담장 쪽으로 나뭇가지를 드러낸 박태기나무를 보았다.

 

 

나뭇가지마다 빨간 꽃망울을 밥풀처럼 매달아 불타오르던 나무, 황혼이 내려앉는 햇살아래 붉게 충혈 되어 있는 나무는 더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박태기나무는 전설이 없다. 이름이 잘 알려진 꽃은 한결같이 전설이 존재하지만 박태기나무는 그 흔한 전설조차 품고 있지 않다. 유다목이란 저주의 이름 때문에 기피의 대상이 되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밥 한술 떠 넣기도 힘든 시절에 독이 묻은 밥풀을 오종종 매달고 있는 나무에 실망해서 그런 걸까. 그러나 세상에 편견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편견을 버리고 그 나무에 다가가 온몸으로 끓어 않다보면 박태기나무도 유다목이란 저주의 이름과는 달리 향기가 물씬 풍겨 오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전설 한 편까지 만들어 준다면 박태기나무도 그만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나무가 될지도 모른다. 내가 할아버지가 되면 아이들에게 박태기나무에 대한 전설을 이렇게 들려줄지 모른다. 

 

아득한 옛날 산골에 할아버지와 손자 단 둘이 살고 있었단다. 몇 해에 걸쳐 나라에 흉년이 들고 전쟁이 심하다 보니 먹을 게 하나도 없었지. 눈만 마주치면 흔하게 보이던 산나물도 말라죽고 나무란 나무도 병을 얻어 황폐하게 변하고 말았지. 할아버지와 손자는 먹을 것을 찾느라 며칠 동안 산을 헤매는 신세가 되고 말았어. 그러던 어느 날, 손자의 눈에 나무 하나가 들어왔어. 나뭇가지 전체가 빨갛게 불타오르는 나무였어, 너무 아름다운 빛을 뿜기에 손자가 할아버지도 모르게 그 나무 곁으로 다가갔지. 아, 그런데 나뭇가지를 덮고 있는 것은 다닥다닥 매달린 밥풀이었어. 손자는 이것이 마치 하느님이 자신한테 내린 선물이라고 정신없이 그 밥풀을 따 먹은 거야. 그런데 얼마 후 손자는 죽고 말았어. 그것은 밥풀이 아니고 독이 있는 꽃이란 걸 몰랐던 거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손자가 환각을 느껴 잘못 본 거였어. 온 신속을 뒤지며 손자를 찾던 할아버지가 그 때서야 손자를 발견하고 산이 떠나갈 듯 통곡을 했지. 그래서 먼 훗날 사람들이 그 나무 꽃이 밥풀을 닮았다고 해서 박태기나무라고 불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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