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꽃과 식물 모음집

할미꽃(펌)

고양도깨비 2007. 3. 27. 02:15
 

쳐다만 보아도 한없이 애처로워 보이는 꽃이 있다.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깊은 계곡, 그것도 잔디조차 말라붙은 쓰러질 듯한 무덤가에 숨어 피는 꽃이 있다. 바로 할미꽃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공원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 어린 시절에 느꼈던 애틋한 마음은 많이 사라졌지만 할미꽃을 보면 아직도 호호백발 할머니가 생각나는 것이 사실이다.

 

볕이 좋아 봄바람을 쐬러 나온 할머니들처럼 화단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할미꽃들, 늙고 병들어 이제 즐거운 것이 하나도 없는 일상사처럼 고개를 푹 숙인 그 모습에 눈가가 시큼 저려왔다. 안 그래도 할미꽃을 만나러 산자락의 임자 없는 무덤이나 둘러볼까 했는데 사정공원에서 할미꽃을 만나다니 의외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땅을 바라보고만 있던 할미꽃, 반쯤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구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한 것이 말못할 사연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두 손녀를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효손 노릇을 톡톡히 하던 작은 손녀에 대한 애절한 사랑 때문이 아닐까. 할미꽃의 꽃말이 ‘슬픈 추억’인 것처럼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했다.

아득한 옛날, 산골에 살던 한 할머니에게 손녀 둘이 있었다. 그러나 큰 손녀와 작은 손녀는 한 가족일까 싶을 정도로 행동과 모습이 딴판이었다. 큰 소녀는 남들도 부러워할 만큼 빼어난 미모인데 성격은 괴팍스러웠다. 그 대신 작은 손녀는 박색이지만 마음만은 비단결 같아 할머니를 아주 정성스럽게 잘 모셨다. 손녀들이 혼기가 차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큰 손녀는 얼굴이 곱고 예뻐 부잣집 아들한테 시집을 간 반면에 작은 손녀는 얼굴이 못생겨 가난한 산골의 머슴한테 시집을 가게 되었다. 비극은 여기서부터 싹트게 되었다.  혼자 생활을 꾸려가기 힘든 할머니는 어느 날 손녀들을 찾아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먼저 큰 소녀 집에 들렀지만 구박만 받고 쫓겨나와야만 했다. 그러나 그 다음 찾아 나섰던 작은 손녀의 집은 너무 멀어 찾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길을 헤매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은 작은 손녀가 할머니의 싸늘한 시신을 붙들고 통곡을 했으나 할머니는 그 길로 산에 묻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 다음 해, 그 무덤에서 꽃 한 송이 곱게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바로 할미꽃이다. 

 

이 전설이 현재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반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노인문제 때문에 빚어지는 가정의 비극은 얼마나 많던가. 늙고 병들었다고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노인들, 한 때나마  가정의 주춧돌이 되었다가 쓸모없는 신세가 되어 거리를 떠도는 노인들은 어쩌면 먼 훗날 닥쳐올 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망하지고 않고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기도를 하며 사는 것이 또한 우리네 노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손주들이 복통이라도 생기면 배를 슬슬 문질러 낫게 해주던 요술 같은 할머니 손이 약손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다정하던 할머니들, 이제 그 손길마저 뿌리치는 메마른 세상이 어떻게 가족들의 화목을 도모할런지 미리 걱정부터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할머니 손이 약손인 것처럼 복통은 물론이고 두통, 부종, 학질 위염, 뇌질환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어 예로부터 민간요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할미꽃은 백두옹이란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꽃이 진 뒤 치렁치렁 늘어진 술이 영락없는 노인의 머리칼을 닮아 그렇게 불렀다. 할미꽃엔 이름만큼 친근하고 다정한 우리네 어머니들의 마음도 함께 들어 있다. 자식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다 끝내는 자신도 모르게 늙어 허리가 반쯤 꼬부라지는 어머니들, 그런 삶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차하면 바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한탄만하다 보면 어머니는 허허로운 무덤에 묻혀 할미꽃으로 피어날 날도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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