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꽃과 식물 모음집

고구마 꽃과 덩쿨(펌)

고양도깨비 2007. 3. 27. 02:13
 

꽃 이름 하나 제대로 모르면서 꽃바람이 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주말만 되면 나는 디지털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선다. 아직까지는 전국을 무대로 놀기에는 시간과 여력이 없어 내가 주로 헤매는 지역은 대전의 변두리 지역이다. 늦게야 꽃바람이 나 꽃만 보면 금세 연분홍으로 물이 드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늘 길에서 오다가다 만나는 사이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기분을 느낀다.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처럼 마음이 한층 들떠있다.
▲ 연분홍빛깔의 고구마꽃이 눈이 시리도록 곱고 화사하다

따스한 햇살이 마음속으로 스며든 때문일까. 평소에도 그랬듯이 카메라는 꽃들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우후죽순 솟아있는 풀섶에 얌전히 고개 숙이고 있는 풀꽃에 눈을 맞출 때는 짜르르 전해오는 마음의 전류에 감전되기도 했다. 내 발걸음은 상당마을로 접어들었다. 대전 동물원 못 미쳐 도로 옆에 위치해 있는 작고 한산한 마을, 어느 농촌과 다를 바 없는 상당마을에도 꽃들은 지천으로 흩어져 있다. 도로 옆 길가나 마주보이는 산비탈 아래나 밭에나 꽃들은 넘치도록 술렁거렸다. 별안간 꽃 귀신이 나타나 그 많은 꽃들을 몽땅 채갈 것 같은 두려움에 잽싸게 렌즈를 갖다 대고 꽃향기를 훔쳐온다. 그 꽃들이 렌즈를 물들이는 와중에도 나는 뭔가 신기한 꽃이 나타나기를 은근히 바랬다. 마음으로 바라면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법, 신기하게도 그런 바람이 현실로 나타났다.
▲ 고구마꽃이 영락없는 나팔꽃을 닮았다

고구마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버린 것이다. 도로 옆 둑을 갈아 만든 고구마밭에서 꽃을 발견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얼키설키 얽혀있는 고구마 순을 헤집자 그 속에서 연분홍 꽃 몇 개가 얼굴을 내민 것이다. 처음엔 그것이 나팔꽃인줄 알았다. 색깔과 모양이 영락없는 나팔꽃을 빼 닮았다. 기후나 조건이 맞아야 핀다는 진귀한 고구마꽃이 지금 이곳이 피어있다는 것은 단연 뉴스감이다.
그도 그럴 듯이 고구마꽃을 본 사람들은 그리 흔치않다. 고향 농촌에서 한평생 농사에 뼈를 묻었던 농사꾼들한테 고구마꽃을 보았다는 말을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고구마꽃은 산삼처럼 꽤나 귀한 꽃이다. 그래서 그런지 쉽사리 그 꽃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눈부신 빛깔과 모양이 다 달아날까 싶어 나는 오랜 동안 꽃에다 시선을 박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마꽃도 영락없는 꽃이다. 주변의 흔한 꽃들과 별로 다르지 않을 정도로 구조도 비슷하다. 꽃잎 속 깊숙이 혼자 가느다란 다리를 뻗고 있는 암술과 그 암술을 둘러싸고 있는 다섯 개의 수술들, 그 정분을 견디지 못했는지 어느새 벌이 날아들어 중매를 서고 있다.
▲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고 있는 고구마꽃이 애닯은 노래 몇 소절 부를 것만 같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상하다. 세상의 암수는 필시 열매를 위해 사랑을 하는 법인데 열매를 맺지 않는 저 고구마꽃은 덧없는 사랑을 하는 것인가. 그 덧없는 사랑 때문에 고구마꽃은 그 지겨운 세월을 모습조차 보여 주기를 꺼려했는지도 모른다. 그 오랜 세월을 참고 참다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기에 세상은 또 그렇게 시끄러운지도 모른다. 요즘 고구마꽃이 만개했다고 여기저기서 수선을 떠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괴산과 제천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 오랜만에 만발한 고구마꽃을 길조라고 하며 연신 떠들어댔다. 물론 처음에는 고구마꽃을 흉조의 대상으로 삼은 적도 있었다. 그 꽃이 피면 나라에 기근과 전쟁이 들고 마을 인심이 흉흉해진다며 애써 피어난 꽃을 남몰래 따내던 시절은 그런데로 순박하였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 고구마꽃을 길조라고 여기는 북쪽 사람들의 고구마 사랑은 더 분에 넘친다. 실례로 고구마꽃이 만발한 시기에 맞춰 해방을 맞이했고 6·25가 끝났으며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됐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이것은 속설로 치부될 수 있지만 고구마꽃이 간직하고 있는 그 신비의 매력이 그런 속설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런 매력을 숨긴 고구마꽃을 집에 와서 아내에게 보여주었지만 아내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고구마는 아예 꽃을 피우지 않으니 거짓말 하지 말라는 투다. 디카에 담아온 꽃 사진을 보여주어도 요지부동이다. 하기야 농촌에서 나고 자란 시골 토박이 출신이지만 한번도 고구마꽃을 보지 않았기에 선뜻 믿으려 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디카 속에서 연분홍빛을 뿜고 있는 고구마꽃에 눈길을 맞추었다. 보면 볼수록 고구마꽃은 더욱 곱고 화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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