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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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이장가> 배경설화
신숭겸의 행적을 기록한 문헌 <평산신씨장절공유사(平山申氏壯節公遺事)>에 그 제작 동기에 관한 소상한 기록과 함께
작품 이 전한다. 창작 경위에 관해서는 그 밖에도 고려사, 명신행적(名臣行蹟),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등에
간략하게나마 보인다.
예종이 서경의 팔관회(八關會)에 참관했을 때 허수아비 둘이 관복을 갖추어 입고 말에 앉아 뜰을 뛰어다녔다. 이상히
여겨 물으니, 좌우에서 다음과 같이 그 경위를 설명하였다.
그 둘은 신숭겸과 김락으로, 태조 왕건이 견훤과 싸우다가 궁지에 몰렸을 때 왕건을 대신해서 죽은 공신이다. 그래서 그
공을 높이고자 태조 때부터 팔관회에서 추모하는 행사를 벌였다. 태조는 그 자리에 두 공신이 없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풀로 두 공신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복식을 갖추고 자리에 앉게 하였다. 그랬더니 두 공신은 술을 받아 마시기도 하고
생시와 같이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예종이 감격해서 한시와 함께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 <도이장가>는 향가인가, 고려가요인가
이 작품에 대한 주요 쟁점은 장르적 성격과 형식에 관한 것이었다. 장르에 관한 문제는 이 작품을 향가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고려 가요로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향가로 보는 근거는 표기법이 향찰식이라는 점과, 형식이 향가의 8구체와 같다는 데 있다. 고려가요로 보는 근거는 창작
연대가 신라의 향가와는 너무 떨어져 있고, 형식을 향가의 8구체와 동질적인 것으로 볼 수 없으며, 향가는 3음절 중심임에
비하여 이 작품은 2음절 중심이라는 데 두고 있다.
이러한 견해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은 장르적 성격 판단의 기준으로 겉으로 드러난 형태에 둔 점이다. 2연시로
보아 왔던 이 작품은 단연시로 볼 수 있고, ' 두 공신이여'는 사뇌가에서 감탄사로 시작되는 이른바 후구에 해당한다.
이러한 구조적 유형에 따르면 이 작품은 사뇌가에 맥락에 닿으므로 향가로 구분할 수 있다.
● 죽음을 초월한 숭고미
이 작품에 표출된 미의식은 숭고미(崇高美)이다. 오로지 임(태조 왕건)을 온전하게 하겠다는 충성심이 하늘 끝까지
미쳤기에 두 공신의 장렬한 죽음은 값진 것이며, 죽음의 비극을 초월하여 숭고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의 죽음은 순간적인
것이나, 곧은 자취 곧 충절은 영원한 것으로 하여 완전히 극복될 수 있다.
제작 경위에서 알 수 있듯이 팔관회와의 관련이나 주술제의적 측면, 제5행에 드러난 가상(假像)의 주술적 발언 등을
고려하면 이 작품은 특히 주술적 숭고미를 구현하고 있다. 아울러 영웅적인 인물이 현실과 죽음을 초극하는 장엄한 행위는
인격적 숭고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은 현전하는 것 중에서 임금이 지은 가장 오래된 향가로, 제작 연대와 제작 경위가 밝혀져 있다는 점에서 문학
사적인 의의가 매우 크다.
● <도이장가> 정리
* 작자 : 예종
* 연대 : 고려 예종 15년 (1120)
* 출전 : 평산 신씨 장절공 유사
* 형식 : 향가계 고려가요 (향찰 표기, 8구체)
* 주제 : 공신의 추모
* 의의 : 향찰로 표기된 마지막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