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고대및고려가요

쌍 화 점

고양도깨비 2007. 3. 8. 23:31

 

 

 

 

 

샹화점(雙花店)에 샹화(雙花) 사라 가고신댄
회회(回回)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싸미 이 店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워 워(偉偉) 다로러 거지러 다로러
긔 잔 데가티 더마거초니 업다

삼쟝사(三藏寺)애 브를 혀라 가고신댄
그 뎔 사쥬(社主)ㅣ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싸미 이 뎔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삿기 샹좌(上座)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워 워(偉偉) 다로러거지러 다로러  
긔 잔 듸가티 덥거츠니 업다

드레 우므레 므를 길라 가고신댄
우뭇룡(龍)이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싸미 이 우믈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싀구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잣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워 워(偉偉) 다로러거지러 다로러
긔 잔 듸가티 덥거츠니 업다

술팔 집의 술를 사라 가고신댄
그 짓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싸미 이 집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싀구비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잣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워 워(偉偉)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듸가티 덤거츠니 업다      

만두가게에 만두를 사러 가니
색목인(色目人)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점포 밖에 나며 들며 하면
조그마한 새끼 광대(이 가게 사환) 네(가 퍼뜨린)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소문을 들은 다른 여인들)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워 워 다로러 거지러 다로러
그 잔 곳 같이 울창한(무성하고 아늑한) 것이 없다.

삼장사에 불을 켜려고(불공을 드리려고) 갔더니
그 절의 사주(寺主)가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절 밖에 나며들며 하면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워 워 다로러 거지러 다로러
그 잔 곳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드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우물의 용이 내 손목을 쥐여이다.
이 소문이 이 우물 밖에 나며들며 하면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워 워 다로러 거지러 다로러
그 잔 곳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술파는 집에 술을 사라 갔는데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며 들며 하면
조그만 시궁에 쓰는 바가지야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워 워 다로러 거지러 다로러
그 잔 곳 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옛글자가 지원되지 않아, 아래아는 ㅏ 로, 반치음은 ㅈ 으로 표기함 *

 <쌍화점> 이해하기

<쌍화점>은 충렬왕 때 지은 것이라고 <고려사악지>에 기록되어 있다.
충렬왕은 이름난 음탕한 왕이다. 전국에 신하를 파견하여 얼굴과 목소리가 예쁜 여인을 뽑아 올려서 관기를 만들어 노래와 춤을 배워주고는 밤낮 연락에 빠져서 정치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록에 의하면 이 노래는 남장별대(男粧別隊)에 의하여 불렸다. 이들은 수도인 개성과 전국 8도에서 차출된 여자 가생들이 남자 복색을 한 집단으로, 노래 기생, 춤 기생, 얼굴 기생으로 나뉘었다. 이들은 1279년(충렬왕 5) 오잠의 지휘 하에 왕 앞에서 이 노래를 대본으로 연희하였다 한다. 이 음탕왕이 즐겨 부른 노래가 <쌍화점>과 <사룡(蛇龍)>이다.
<쌍화점>은 <악장가사>에 한글로 기록되어 오늘까지 전하고 있고, <사룡>은 한역시로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쌍화점은 상화(霜花)떡을 파는 가게인데, 아마 당시 몽고 사람들이 경영하는 빵집인 것 같다. 상화떡은 술을 넣어 발효시킨 떡이니, 우리의 고유한 떡은 아니고 요새의 빵과 비슷한 서양식 떡인 것 같다.
노래의 내용은 이렇다.
어떤 여인이 쌍화점의 상화떡을 사러 갔더니, 그 가게의 주인인 회회아비가 자기의 손목을 잡았고, 삼장사라는 절에 불을 켜러 갔더니 중이 또 자기의 손목을 잡았다. 다음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용이 손목을 잡았고 끝으로 술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 술집 주인이 역시 자기의 손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4절로 된 이 노래는 당시의 퇴폐적인 사회상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
첫 절의 '회회아비'는 몽고 족속, 곧 당시 고려에 주둔하고 있는 외인부대를 상징한다. 점령 군인과 토착 여인들의 교제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둘째 절의 '삼장사의 중'은 종교를 대표하고,
셋째 절의 '용'은 왕을 상징한다. 용이 왕을 뜻하는 경우는 많다. 용상, 용안, 용비어천가 등의 용은 모두 왕을 뜻하지만 특히 고려의 왕인 왕씨(왕씨)들은 스스로 용의 후예로 자처했고, 그래서 왕족들의 겨드랑이에는 용의 비늘이 있다고도 했다.
넷째 절의 '술집 지아비'는 평민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위로는 왕으로부터 아래로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횡으로는 종교계도, 점령군도 모두 부패했다는 것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가고신덴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어이다'에서 '나'는 물론 직업적인 유녀로 보아야 하겠지만, 이는 반드시 창녀나 기생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여염집의 부녀자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노래는 물론 타락한 사회를 풍자하는 노래이지만, 이 작품의 매력은 등장하는 인물들을 상징화한 데 있다.
회회아비 밑에는 '삿기 광대', 중 밑에는 '상좌놈', 용 밑에는 '두레박', 술집 지아비 밑에는 술을 푸는 '바가지' 등이 '나'라는 여인과 연결되어 있다. 용은 왕이요, 두레박은 간신일 것이다, '나'라는 여인은 상전과 그의 종, 왕과 그의 신하들과도 가까운 교제를 맺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온 사회가 한결같이 부패 타락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충렬왕은 여러 미녀들에게 비단옷을 입히고 혹 남자 복장을 시켜서 이 노래를 합창하게 하고 자기는 간신들과 술을 마시며 즐겼다고 하니, 그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쌍화점>은 '
망국의 노래'였었다.
<쌍화점>이 귀족사회를 풍자했다면, <만전춘>은 평민 사회의 부패를 노래해서 이 두 작품은 이런 면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 <쌍화점> 정리
* 연대 : 충렬왕
* 내용 :
남녀상열지사(당시의 퇴폐적인 성윤리를 풍자)
* 형식 : 4절
* 표현 : 유창한 운율과 뛰어난 은유
            (왕궁 - 우물, 제왕 - 용, 쌍화 -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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