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기 좋은곳/여행(국내)

아들을 원하는 여인들의 성지

고양도깨비 2007. 2. 14. 22:11
▲ 보물 제 1187호인 불탑사 오층석탑

문화의 소산, 그 발자취를 찾아서

백로가 지난 남녘 하늘이 코발트색이다. 하늘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마음이 스산해지는 여름의 끝자락. 산과 바다, 계곡으로 휴가를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계절이다. 사람마다 길 떠남의 목적지는 다르겠지만, '학문이나 예술적 가치'가 있는 문화의 소산을 찾아 사람과 문화재의 상생을 체험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풍경 속에 감춰진 보물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 보물의 의미를 아주 대단한 것으로 생각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보물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으나 그 보물은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처럼 여긴다.

▲ 아들을 원하는 여인들의성지

원당봉이 안고 있는 조용한 절집

제주도 오름의 하나인 원당봉. 해발 170.4m의 원당봉 기슭에는 조용한 절집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원당봉은 삼첩칠봉이라 불렀다. 3개의 크고 작은 능선에 7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절집에는 고려시대 원의 순제가 태자를 얻기 위해 불공을 드렸다는 오층석탑이 있다.

제주도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원당사지. 그리고 그 절집에 숨겨져 있는 오층석탑을 사람들은 '불멸의 탑'이라 부른다. 원당사지는 여름내 들떠 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추스르는 절집이다. 그래서인지 절집에는 고요가 흐른다. 가끔씩 잠자리와 호랑나무가 가을 친구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와 있을 뿐, 스님의 불경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제주시 삼양 1동 696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오층석탑은 대웅전의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들려오는 바에 따르면, 오층석탑은 태자가 없어 고민하던 원의 순제가 '북두의 명맥이 비친 삼첩칠봉에 탑을 세워 불공을 드려야 한다'는 승려의 계시를 믿고, 순제의 제2황비였던 기황후의 간청에 의하여 원당봉 기슭에 원당사와 함께 불탑을 세워 사자를 보내어 불공을 드린 결과 아들을 얻었다고 전한다.

▲ 절집에서 보는 풍경
때문에 그 소문을 듣고 아들을 얻고자 원하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원당사에서 불공을 드리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지 못하는 일에 구도자의 힘을 빌려 욕심을 채우려 하는 일이 얼마나 무고한 일인가? 하지만 불탑사 오층석탑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말없이 가을 하늘만 바라본다.

삼첩칠봉에 숨어있는 보물 1187호

원제국시대 제주도의 3대 사찰의 하나였던 원당사는 13세기 말엽 원에 의해 창건됐다. 17세기 중엽까지 존속되었다가 1914년 이곳에 불탑사가 재건되었다. 지금 경내에는 당시 세웠던 오층석탑이 보물 제 1187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 불탑사 오층석탑 가는길
절집 대문이라야 마치 고향집 대문처럼 아주 작다. 여느 큰 사찰의 일주문에 비하면 아주 협소하지만, 파란 잔디 위에 놓여진 디딤돌을 밟고 대웅전으로 향하는 마음은 마치 구도자가 된 것처럼 날아갈 것 같다. 이곳에서만이라도 속세를 떠나 보고 싶은 마음이 또 하나의 욕망의 배를 채우는 순간이다. 절집의 디딤돌을 밟고 명당자리에서 소원을 빌어보면 뭔가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

그러나 경내의 파란 잔디 위에는 전설처럼 우뚝 버티고 서 있어야 할 오층석탑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치솟을 듯 버티고 서 있을 오층석탑의 화려함을 생각했던 나에게 또 무지를 깨닫게 하는 순간이다.

먼저 대웅전으로 들어가 3배를 올렸다. 그리고 오층석탑을 찾아 나섰다. 디딤돌을 끝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절은 불에 타 없어졌지만, 탑만은 고려 당시의 원형을 지키고 있다. 돌하르방처럼 제주 현무암으로 만들어졌고, 탑은 옥개석의 비례에 따라 축조되었다.

▲ 구멍 숭숭 뚫린 제주도 현무암

오층석탑의 문화재의 가치

1993년 11월 19일 보물로 지정된 오층석탑의 높이는 3.85m. 각 층의 부분 양식은 고려시대의 조각수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탑의 높이는 395cm이며, 측면 너비 84cm, 정면 너비는 89cm이나 1층의 기단과 5층의 옥신은 심하게 좁아져서 특이한 양상을 하고 있다.

▲ 네 귀퉁이는 처마 끝만 살짝 올려 마무리했다.
각 층의 옥신이나 옥개는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옥신은 사각형에 어떠한 문양도 두지 않은 간략한 형식이이다. 네 귀퉁이는 처마 끝만 살짝 올려 마무리되어 있었다. 하늘을 향해 네 귀퉁이 처마 끝을 살짝 들어 올린 불탑사 오층석탑은 주위 정경들과 함께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단층기단 위에는 5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으며, 정상에 상륜을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특히 1매석으로 조성한 지대석 상면에는 낮은 1단의 괴임을 각출하여 기단을 받고 있다. 기단면석에는 뒷면을 제외한 3면에 같은 크기와 형식의 면상내에 귀꽂문을 장식하였다. 1매석의 갑석은 부연이 없고 상면에 넓직한 괴임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 돌하르방처럼 제주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다.
탑신의 1층 몸돌 남쪽면에는 감실을 만들어 놓았다.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그리 크지 않지만, 네 귀퉁이에서 뚜렷하게 치켜 올려져 있다. 꼭대기에 올려진 머리장식은 아래의 돌과 그 재료가 달라서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전체적인 탑의 모양이 조형성이 적고 무거워 보이는 점으로 보아 지방색이 강했던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멍이 술렁술렁 뚫린 제주도의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것이 가장 특색이 있다.

▲ 가을햇빛에 눈 부신 범종

아들을 원하는 여인들의 성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을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다. 또한 당시 원나라 사람들에게까지 제주도가 삼첩칠봉의 명당자리로 일컬어졌다는 사실에 감탄할 뿐이다. 이를 말해 주듯 오층석탑 주변에는 불탑사에 대한 비밀의 내역서가 여기저기 새겨져 있다.

따라서 이곳은 아들을 원하는 여인들의 성지처럼 되었다. 석탑이 세워질 당시 사찰의 이름을 원당사로 하였으나 원당사는 세 번 화재로 소실되었다.

지금에야 아들도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 저출산 세계 1위로 불명예의 낙인이 찍혀 있지만, 한때 아들을 고집하던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오층석탑의 의미는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현대 사람들에게는 ‘아들을 원하는 여인들의 성지’가 무의미해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아이 하나만 낳기도 거부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문득 성지에 와서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조그만 절집에서 느끼는 중생의 깨달음과 함께 구멍이 숭숭 뚫린 돌에 대한 생명력, 삼첩칠봉의 자연의 위대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풍경마저 가려진 조용한 절집은 왜 이리도 한가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