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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成宗)과 계비(繼妃) 정현왕후(貞顯王后) - 선릉(宣陵)

고양도깨비 2010. 9. 1. 09:20

 

제9대 성종(成宗)과 계비(繼妃) 정현왕후(貞顯王后) - 선릉(宣陵)

 

선릉 - 성종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35-4 { 宣靖陵 소재 }
 - 사 적 : 제 199 호

 

 - 宣陵의 특징 


 : 세조의 손자이고 추존(追尊)된 덕종(德宗)의 차남인 成宗(이혈 : 1457-1494, 재위 25년)과 계비(繼妃)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 : 1462-1530)의 선릉(宣陵)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는데, 성종의 능에는 검약(儉約)해야 한다는 세조(世祖)의 명과 다르게 봉분에 병풍석(屛風石)을 둘러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한 것이 특이합니다.
 후에 중종(中宗)의 정릉(靖陵)이 그의 두 번째 계비(繼妃)인 문정왕후(文定王后))에 의해 선릉의 경내로 옮겨져 선정릉(宣靖陵)의 명칭으로 불리는데, 중종의
정릉(靖陵)이 조성될 때 성종의 선릉이 그 모범이 되었다고 합니다. 

 

선릉 - 계비 정현왕후

 

- 成宗代의 사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1471

2년

12월, 춘추관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

1484

15년

9월, 창경궁(昌慶宮) 완성

 1472

3년

5월, 춘추관 예종실록(睿宗實錄) 편찬

1488

19년

5월, 유향소(留鄕所)를 다시 둠

1476

7년

8월, 숙의(淑儀) 윤씨(尹氏) 왕비 책봉

12월, 월산대군{성종 형} 죽음{1454- }

1478

9년

11월, 서거정 <동문선(東文選)> 편찬

1492

23년

3월, 왜인(倭人)의 사무역(私貿易) 허가

1479

10년

6월, 왕비 윤씨 폐위함

* 콜럼부스 아메리카 항로 발견

1480

11년

2월, 원자 융{연산군}을 왕세자로 봉함

1494

25년

12월, 성종 승하{1457- }, 연산군 즉위

 

 - 뒷 이야기 


 : 성종은 아버지{추존 덕종(德宗)}가 생후 2달만에 승하하고, 예종 또한 1년만에 승하해 세조의 비(妃) 정희대비(貞熹大妃)의 명으로 13살의 나이[1469년]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 때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齊安大君)은 간난아이였고,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은 병약해서 결국 성종이 왕위에 오른 것입니다. 7년간의 섭정을 지나 친정(親政)한 성종은 재위 25년간 조선왕조의 기반을 완성시킨<成> 국왕이 되었습니다.
 성종대의 치적으로 인해 조선조의 기틀이 완성된 것은 여러 가지 업적에서 나타납니다. 홍문관(弘文館), 존경각(尊經閣), 독서당(讀書堂)을 창설해 어진 인재들을 등용했고, 세조 대부터 시작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개정, 완성 반포하여 국가의 통치체제를 확립시켰습니다. 또한 역사서인 <동국통감(東國通鑑)>과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문학서인 <동문선(東文選)> 등의 편찬에서 보이듯이 왕성한 문화적 발전을 이루었고, 외적으로도 북방의 여진족(女眞族) 소탕이나 남방의 일본(日本)과의 무역 확대 등으로 조선조의 힘이 크게 진작된 전성기를 이룹니다.

 정현왕후 윤씨는 파평윤씨(坡平尹氏)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딸로 태어나 숙의(淑儀)에 봉해졌다가, 왕비 공혜왕후(恭惠王后)가 승하(성종 5년, 1474년)하고 원자(元子-연산군(燕山君))를 낳은 숙의(淑儀) 윤씨(尹氏)가 계비(繼妃)가 되었으나 폐위되자 1480년(성종 11년)에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슬하에 중종(中宗)과 신숙공주(愼淑公主)를 낳고 중종 25년에 승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