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스님을 시봉하다보면 크신 스승의
그늘 위에서 큰 가르침을 얻게 마련이다.
은사스님께서 나뿐 아니라 신도님들께도
가장 잘 하시는 법문 중 하나가 복 짓고 받는
일상에 관한 이야기셨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며 일체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두 가지로
그 마음을 돌려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인데, 힘들고
괴로운 상황은 ‘복을 짓는 일’이며 행복하고 즐거운
상황은 ‘복을 받는 일’이라고 말이다.
첫째, 힘들고 괴롭고 하기 싫은 일이 생기거나,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이 느껴질 때, 억울함을 당했을 때,
그리고 내가 한 일의 양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았을 경우
등 이처럼 힘들고 괴로울 때 그 마음을 항복 받기 위해
지금의 이 상황을 ‘복을 짓고 있구나’ 하며 대 긍정으로
그 마음을 돌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당장은 손해보며 괴롭겠지만 그것이 바로 복을 짓는 행위라는
것이다.
또한 둘째로 내가 한 것보다 많은 양의 보수와 칭찬을
받았을 때, 행복하고 즐겁다고 느껴질 때 이 때에도
그 기쁜 마음에 들떠있기 보다는 그 들떠있는 마음을
항복 받기 위해 이것이 ‘복을 받고 있구나’ 하며 크게 돌려
그 행복감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은사 스님들께서는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이 두 가지 생활 중에
5분의 4는 ‘복을 짓는 생활’을 그리고 5분의 1은 ‘
복을 받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복을 받는 것은
저축했던 것을 쓰는 생활이요, 복을 짓는 것은 저축하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힘들 때는 복 짓는 것, 행복할 때면 복 받는 것’
이처럼 생활한다면 우리 생활의 양극단인 괴로운 삶과
즐거운 삶 모두를 잘 조복(調伏) 받을 수 있지 않겠나.
이렇듯 일체의 행위, 일체의 상황을 복 짓고 받는
두 가지로 돌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밝아 질 것이다.
어떤 상황도 이 두 가지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는 없기 때문.
복 짓는 생활은 그 순간 고통이 따르지만 크게
보면 밝고 복된 일이며, 복 받는 생활은 그 순간 행복하고
기쁘지만 그동안 저축해 놓았던 복을 까먹는 일이다.
힘들고 괴로울 때 내 주위를 환경을 그리고 사람들을
탓하기보다는 ‘복 짓는 일이구나’
하며 마음을 다스릴 일이다.
이와 같이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그 어떤 경계라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힘겹고 괴로운 일은 ‘복 짓는 일’ 행복하고 편한 일은
복 받는 일’이라고 한다면 어찌 복 받는 일에만 행복해
하겠는가. 오히려 힘들고 고된 일을 하며 ‘복 짓는 일’
이라는 데에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 닦는 수행자에게 이 세상은 참으로 밝은
수행터이며 복밭이 되지 않겠나.
삶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움과 괴로움이
교차하게 마련이다.
즐겁다고 거기에 빠져 나태할 것도 아니고, 괴롭다고
그 상황에 빠져 좌절할 일만도 아니다.
그렇기에 ‘복짓기 복받기’설법이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는 여여한 삶에 대한 밝은
수행법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