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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박물관의 새로운 패러다임

고양도깨비 2008. 12. 16. 16:17

21세기의 박물관의 새로운 패러다임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화에 따른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

 

수세기에 거친 박물관의 형성과 발전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경제적, 정치적인 문제에 도전을 받고 있다. 근대 박물관의 형성과 더불어, 박물관 자체에 한되지 않고 모든 문화기관과 경쟁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대박물관은 박물관의 사회적 기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박물관의 경영자와 박물관내부의 전문인력의 부단한 노력과 박물관의 설립취지를 달성하는데 협력하는 지역사회의 구성원의 참여에 따라 좌우되며, 이러한 일반대중의 박물관활동의 참여는 단순히 박물관 관람객의 수준을 넘어 재원조성, 자원봉사활동, 후원자 등과 같은 많은 활동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이러한 박물관의 사회적 기능의 추이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21세기 우리의 박물관이 지향하여야 할 몇 가지의 문제점을 박물관경영학적인 관점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물관의 효시인 고대의 뮤제이옹 알렉산드리아(Museuion of Alexandria), 중세의 사원중심의 종교박물관,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 가문의 박물관(the Medici Gallery)은 모두 사유재산을 기반으로 형성된 박물관이었으며, 이들 박물관은 수집기능과 약간의 교육과 연구의 기능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박물관의 사회적 기능은 지금의 박물관처럼 활성화되지 못한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르네상스시대까지는 박물관이 '호기심의 상자(box of curiosities)'라는 개념으로 변화함에 따라, 소장품의 접근(accessibility)에 대한 요구가 발생하였지만, 박물관은 소장품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공개하지 않았는데, 예를 들면, 관람객의 수를 몇 몇으로 제한하거나 소장품의 일부만을 공개하는 방식을 취해서 박물관이용에 제한적인 요소를 안고 있었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의 소장품은 사유재산을 근거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비록 '관람객에게 유익한 것'을 제공하였지만, 관람객의 다양한 요구는 박물관경영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물관이 대중과 함께 호흡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공공박물관이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the Louvre Museum),미국의 스미소니언박물관(the Smithsonian Museum)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되면서, 박물관은 비영리적인 공공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소장품이 다양화되고 양적으로 증가되면서 동시에 대중 접근성이 병행하여 발전하게 된다. 공익을 위한 봉사가 박물관의 기능에 포함된다는 것은, 죠지 브라운 부드(Goerge Brown Boode)가 말한 것처럼, "박물관이 단지 소장품을 수집하여 유리진열장에 나열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닌, 일반대중에게 소장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개발하여 적절하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근대의 박물관에 '공공봉사'의 개념이 제시되고 봉사의 영역은 확대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관람객의 요구를 수렴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박물관의 현실적인 상황만을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박물관은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외부적인 환경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일차적인 요인으로는 소장품 관리를 위한 제반적인 시설의 확충, 전문인력의 고용, 각종 교육프로그램과 전시회의 기획에 소요되는 경비가 기부금과 정부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예산을 초과하게 됨으로써, 공공단체와 외부단체로부터의 재원조성(funding)은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였다. 이차적인 요인으로는, 과학의 발전과 발달에 따라 텔레비전이 각 가정의 귀중한 정보매체로 보급되었고, 기술혁신으로 인한 인쇄기술의 보급으로 양질의 책이 대량으로 출판됨으로서 다른 세계에 대한 간접적인 체험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고, 박물관으로 향하던 관람객의 발길은 다양한 문화활동의 영역으로 분산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러한 박물관의 내·외적인 환경으로 인해, 현대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관람객이 소장품과 상호교류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봉사를 제공함으로써, 관람객은 호기심과 질문을 유발하여 자발적으로 학습에 대한 욕구를 느끼게 하고 실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앞으로 요구되는 박물관의 패러다임(paradigm)은 경영체계의 발전과 더불어 지도력과 통찰력을 갖추고, 과거의 사건과 활동에 대한 선별적인 해석이 아닌 미래지향적인 내용이 포함된 다양한 전시 및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기존의 수동적으로 관람객이 전시회에 오기를 기다리는 자세에서 탈피하여 능동적으로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러한 박물관 기능의 방향전환은 국제박물관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1989)의 박물관의 정의에도 명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연구·교육·향락의 목적으로, 인류과 인류환경의 물질적인 증거물인 문화유산을 수집, 보존, 조사·연구, 상호교류, 전시함으로써, 사회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며, 일반대중에게 봉사를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적이며 항구적인 기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박물관은 과거와 현재에 일어나는 사실들에 대한 정보를 소장품을 통해 제공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부분적으로는, 경제·정치·사회·문화·환경 등의 변화에 따라 박물관이 사회의 소산물로서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도 변모하게 되었고, 고전적인 박물관이 수행하던 수집과 연구 중심의 기능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박물관경영학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은, 사물중심(object-centered)에서 지역사회중심(community-centered)으로 박물관의 기능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박물관 기능의 변화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에 기술한 ICOM의 정의에서 주목해야 할 박물관의 기능은 "연구·교육·향락의 목적", "사회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 "일반대중에게 봉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반 대중에게 다양한 봉사를 제공하여 사회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박물관은 자체적으로 기능중심의 부서화 작업(functional departmentalization)이 실행되었고, 이에 따라 기존의 수직조직이 수평조직이나 행렬구조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직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위원회(committee), 이사회(board of trustees)와 같은 정책기구, 테스크 포스(task force)와 같이 조직 내에 새로운 형태의 기능을 수행하는 단위를 별도로 형성되어 경영구조의 혁신을 가져왔다.

한 섭외홍보과(마케팅부서)의 기능이 강화됨으로써, 섭외홍보과는 전시기획과와 교육개발과와 협력하여, 관람객의 행동과 성향을 마케팅(marketing)의 연구대상으로, 관람객에 대한 시장조사인 관람목적(Why goes to museum?)과 관람객 계층(Who goes to museum?)에 대해 사전에 분석하고 평가하는 '이용자 평가제(visitor eval!uation)'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관람객조사를 실시하여, 여기서 얻어지는 요구와 기회를 토대로 박물관은 연구·교육·향락의 목적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다.

 

람객의 계층에 대한 정보는 연령, 성(性), 경제적, 직업, 가족 구성원, 교육수준이 포함되며 이러한 인구통계를 분석하면 잠재관람객(potential audience)의 계층과 목표관람객(target audience)의 윤곽이 가시화 된다. 잠재관람객은 단일화된 총체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작은 계층이 분화된 단위(segment)인 열성집단(enthusiasts), 관심집단 (interested), 비참여/ 무관심집단(non-interested/ non-attenders)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성집단은 기존의 박물관의 문화체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갖고 있는 수요자 계층이며, 예술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거나 취미활동을 하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회원에 가입하여 박물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특정예술인을 후원하거나 박물관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기도 하고, 독자적인 박물관이나 화랑의 설립에 대한 비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관심집단은 예술소비자의 범주에는 속하며 비록 특정한 분야나 활동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동기부여가 되면 상황에 따라 관심이 유발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비참여/ 무관심집단은 기존의 박물관의 체험이 부정적이었거나, 혹은 박물관체험의 기회를 갖지 못했거나, 박물관체험을 할 수 있는 심리적, 경제적, 신체적 여건을 갖고 있지 못한 그룹인데 저소득층, 노약자, 문맹자, 병약자, 신체부자유자, 장애인이 포함된다.

물관의 관람목적은 관람객의 계층보다도 세분화되어 있다. 예를 들면, 전공자나 관련된 업무를 진행시키는 관람객은 전시회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재충전하기를 원할 것이며, 일상적으로 친구를 만나는 장소로 이용이 될 수 있으며, 교육프로그램과 특별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뮤지움 샵(museum shop)에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휴일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혹은 문화에 대한 친밀감을 도모하거나 문화에 대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원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 박물관을 방문하기도 한다.

물관은 시장조사를 통해서 관람객에 대한 정보를 근거로 관람객이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박물관 본연의 사회적인 기능을 강화시켰고, 기존의 박물관 관람객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박물관에 무관심한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관람객의 지원과 정부와 공공단체의 재정적인 지원을 동시에 증가시키는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박물관은 비영리적인 공공기관으로써의 사회적인 기능, 정체성(identity), 존재의의에 대하여 대외적으로 사회와 사회구성원에게 인식시켜, 그들의 사회·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문화기관이라는 이미지를 정당화 할 수 있다.

21세기의 현대박물관에 관람객을 위한 사회적인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면, 이에 편승하여 21세기 우리 나라의 박물관은 어떠한 발전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몇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기존의 한국 박물관의 조직구조의 모형은 기능상으로는 업무가 분화(division of work)된 수평구조의 모형을 지니고 있으며 위원회제도는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박물관은 사립이든 공립이든 상관없이 모두 비영리적인 공공기관이다. 이러한 박물관의 공공성은 어느 한 대인의 독단으로 운영되기보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사회, 자문위원회, 운영위윈회, 심의위원회 등과 같은 기구들이 정책결정을 위한 위윈회 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박물관의 공공성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박물관운영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면에서는 매우 중요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나라 박물관에서는 대부분 의사결정과정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와 같은 제도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거나 혹은 도입하고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정책의사결정기구로서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자문이라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어서 박물관이 공공 기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제도적인 틀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그와 직결되는 운영의 공공성을 확보하는데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나라 박물관의 조직구조의 모형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외견상으로는 관장을 최고경영자로 축을 세우고, 기능상으로는 업무가 분화(division of work)된 수평구조의 모형을 지니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관료적인 수직구조의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수직적인 경영구조에서는 조직의 구성원이 적을 때에는, 의사결정이 체계적으로 질서 있게 이루어져서 조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지만, 수직적인 계층이 많을 수록 비용이 많이 들고 경영계층이나 구성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복잡하고 계획수립과 통제가 복잡해 질 수 있다. 반면에 기능에 따라 분화된 수평구조의 경우에는 기능적인 전문화가 이루어 고도의 능률성과 비용을 최소화하여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지만,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기능으로 분화된 부서의 구성원들이 다른 부서의 업무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기능간에 갈등이 발생할 수 도 있다.

반적으로 국·공립박물관의 조직구조는 기본적으로 관장을 축으로 하여, 서무과, 관리과 섭외교육과를 포함한 '사무국'과 유물의 관리와 고고학과 미술사의 학술적인 조사와 연구를 담당하는 '학예연구실'의 두 축으로 이룬 구조를 갖고 있거나, 때로는 유물과학과와 전시운영과가 학예연구실과 수평적인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이러한 조직구조는 외견상으로는 사무국과 학예연구실이 수평적인 위치에 놓여진 수평구조의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학예연구실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국·공립박물관의 무게 중심이 고고학, 미술사학, 역사학 및 인류학 분야에 속하는 국가 귀속 문화재와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연구 조사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는 박물관이 하나의 조직으로써 목표달성을 위한 경영효율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데 기인한다.

러나 박물관의 기능은 학예연구만이 아닌, 수집, 보존, 전시, 교육, 홍보, 마케팅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 하여야 한다. 한국의 박물관은 학예연구기능의 강화와 업무분장에 따른 역할분담(division of labor)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고, 기능별 부서화 작업이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박물관 업무의 효율성이 저하되며, 박물관의 제 기능은 정체된 느낌이 든다. 특히, 섭외교육과가 사무국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에는, 아무리 학예연구실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더라도,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한 지식의 사회적 환원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공기관으로서의 박물관의 설립취지를 성취할 수 없게 된다. 섭외교육과는 기본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시기획과 프로그램에 대해 일반 대중에게 홍보하고, 멤버쉽(membershiip)가입한 회원을 관리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외에 섭외홍보과는 박물관을 활성화시켜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홍보활동을 통해서 박물관의 재정적인 후원자를 유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국·공립박물관은 직접적으로는 기부나 후원을 받을 수는 없지만, 문예진흥기금을 통해 '특정기부'를 받아서 특별전시회나 교육프로그램을 진행시킬 수도 있고, 개인이나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나 후원을 '기부채납' 의 형식으로 수용할 수 있다.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의 섭외교육과 신설에 대한 기획은, 국립박물관으로서의 신뢰성과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국가의 중요한 민속자료가 응축된 공간에서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차별화 된 사회교육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의 관람객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게 될 것이다.

번째로, 박물관의 다양한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설과 업무분장이 나뉘어진 조직구성원인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물관전문인력이라고 하면 우리는 통상 학예연구원을 떠오르게 되지만, 미국박물관협회(AAM)에 의하면, 관리위윈회, 관장, 학예연구원, 교육담당자, 전시기획자, 전시디자이너, 편집인, 보존과학자, 자료관리자, 사서, 홍보기획담당자, 서무담당, 시설관리담당자, 안전요원 등 13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현실을 고려하면 위에서 기술한 전문인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수집, 보존, 조사·연구, 전시, 교육, 경영, 마케팅의 업무에 관한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당면과제이다. 사실 우리 나라의 학예사는 박물관 업무에 관한 거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특히 중소규모의 박물관일수록 박물관의 업무분장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본연의 조사·연구활동은 물론이고 등록, 교육, 전시디자인 출판, 홍보에 이르는 모든 박물관의 업무에 관여하고 있다.

난 2월 문화관광부에서 학예사 자격인증에 관한 시행령을 공포하였고, 이에 대해 학계와 미술계에서 거센 파문이 일어났다. 미국의 경우에는 국가자격인증제도가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이나 프랑스의 경우에 국가자격인증제도는 있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우리가 이러한 제도를 답습할 필요성과 이러한 제도를 수용할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자격인증제도가 입법화되기 이전에 전문인력을 교육시킬 수 있는 교육환경이 구축되어야 했다. 국내에 박물관학이 정식 학과로 운영되는 곳은 4년제 대학이나 대학원에는 거의 없으며, 박물관학과 관련된 교과과목을 체계적으로 개설한 곳도 불과 몇 군데에 국한되기 때문에 기존의 박물관과 미술관관련분야의 학과에서는 교과과정의 조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기존의 교육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진 상태에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었더라면 문제의 심각성이 이렇게 까지 파급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행령자체도 몇 가지 한계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예사'라는 용어의 사용에 문제가 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학예사'라는 용어보다는 '박물관전문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어야만 했다. 박물관미술관 진흥법 제6조에, "제 4조 규정에 의한 박물관·미술관 사업을 담당하는 박물관·미술관 학예사를 둘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제4조 박물관 사업은 수집, 보존, 조사·연구, 전시, 교육 행사 등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연구를 담당하는 학예사라는 용어로 박물관사업을 진행시키는 인력을 총괄적으로 지칭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예사의 자격요건과 전형방법은 1급과 2급 학예사의 경우에,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자격요건을 갖춘 자는 서류전형의 방법으로 심의하지만, 준학예사의 경우는 공통과목(박물관학과 외국어)과 선택과목(고고학, 미술학, 예술학, 민속학, 서지학, 한국사, 인류학, 자연사, 과학사, 문화사, 보존과학 및 전시기획론) 중 2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과목의 경우 보존과학과 전시기획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은 극히 학예기능위주이며, 박물관의 수집, 교육, 경영(홍보 및 마케팅)기능은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쨌거나 시행령은 이미 공포되었고, 올해 안에 제 1차 전형이 이루어져 학예사자격증을 취득한 전문인력이 배출될 것이다. 물론 이 제도는 채용과는 별개라고 이미 문화관광부에서 설명했지만,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전문인력의 몇 퍼센트가 실직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까? 박물관·미술관법에 의거하면, 종합박물관은 각 분야별 학예사 1인 이상, 전문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소장품 100점 이상에 학예사 1인이상으로 전문인력의 배치를 권고하고 있다. 이는 단지 국·공립 및 등록박물관에 국한된 권고사항일 뿐이고, 현실적으로는 학예사를 한 명 고용하는 것에 대해 법적인 구속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명의 한 명의 학예사를 공용하여 몇 만점의 소장품을 관리할 수 도 없다.

1998년 문화관광위원회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박물관전문직은 총 425명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는 국립박물관 및 미술관 146명, 공립박물관 및 미술관 97명, 사립박물관 및 미술관 182명을 합한 수치이다. 박물관 1관당 전문직원의 수는 3.0명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립박물관의 경우, 전문직원의 수는 1관당 5.6명, 공립박물관의 경우 1관당 3.3명, 사립박물관의 경우 1관당 2.1명으로 나타났다. 이때 박물관 전문직원의 수는 보존과학사를 비롯한 기타 기능직 전문직원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학예사의 수만을 산출한 것으로 사립박물관으로 갈수록 전문직원의 수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기 1997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인하여 기존 박물관의 인원 감축이 계속되고 있으며, 박물관의 설립이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박물관전문인력에 대한 수요는 당분간 증대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물관 학예사 자격인증제도를 시행하게 될 경우, 자격제도의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기 어려우며, 자격제도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따라서 이 제도가 시행된다는 것은 문화정책적인 지원, 예산확충, 인력수급이 동시에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박물관 내에서의 학예사의 위상도 제고되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국내에서는 기획과 집행을 분리하는 행정관행 속에서 사무국 행정직 중심의 박물관 운영으로 인해 학예사가 본연의 연구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우며, 경제적인 측면에서 외국의 학예사가 받는 수준을 보장해 줄 수는 없지만, 학예사가 박물관 내에서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막으로, 박물관 시설의 미비와 프로그램 다양성의 부재, 전문박물관의 확충 등도 시급한 현안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존의 박물관프로그램은 유형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프로그램만을 개발하였지만, 현대박물관에서는 관람객의 지속적인 요구를 수렴하여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여, 현재 적지 않은 박물관들이 인터넷을 통한 박물관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장품을 3-D로 구성하여 박물관이 어떠한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는 어떠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가를 시각적인 정보로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화 된 정보의 유입은 '가상미술관(cyber museum)'이라는 박물관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여 관람객들이 편안히 집에 앉아서 예술작품을 감상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지만, 관람객의 감소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요소도 갖고 있다.

21세기의 박물관의 미래는 박물관이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시장 지향적, 관람객 지향적, 외부 지향적인 경영방식을 추구하며,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의 문화유산을 후대에 전승하는 타임캡슐(time capsule)의 기능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즐겨 찾는 편안한 휴식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10년 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을 회상해 본다. 본관 1층 로비에서 재원조성을 위한 갈라(gala)에서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흘러 나왔고, 박물관 종사자들은 열정적으로 그들이 기획한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하였고, 전시장의 관람객들과 기업의 후원자들은 프로젝트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몇 달 후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전시회로 완성되어졌고, 그 전시회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었던 관람객과 후원자에게 바쳐졌다. 21세기 한국의 박물관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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