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스커트보다 짧은 조선시대 갑옷?
[오마이뉴스 최형국 기자]
요즘 사극 드라마는 말 그대로 호황의 시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방송 3사에서도 주말 황금시간대에 사극을 배치할 정도로 사극은 중심 소재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고구려의 주몽 및 연개소문, 발해의 대조영 등 다양한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지고 사람들 사이에 회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펼쳐지는 국방부 전통의장대 공연에서도 전통검법을 시범보이고 있어 사람들의 박수를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 전통무예가 각광을 받으면서 국방부 전통의장대에서도 전통무예 시범을 하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용산 전쟁기념관 앞을 가득 채우는 그들의 함성 소리에서 조선 무인들의 기개를 느낄 수 있습니다. |
그러나 TV 사극에서 늘 제기되었던 고증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상태여서 드라마를 보는 중 의연 중에 보고 배우는 잘못된 역사적 내용들로 인하여 오히려 잘못된 역사인식을 가질까 하는 의구심도 생깁니다.
이러한 잘못된 고증은 이젠 TV 드라마를 넘어 국방부 전통의장대에서도 심심치 않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가를 대표해서 외국 사절에 대한 환영, 환송의 의식을 담당하는 그들이 과연 어떤 고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볼까 합니다.
[용 무늬] 아무 옷에나 왕의 상징 새기면 생뚱맞죠
▲ 오른편 사진은 현재 국방부 전통의장대 전통검법단 지휘관의 복색이며, 왼편은 구군복을 입은 정조의 초상화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것이 좋다고 하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국방부 의장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심각히 고려해 봐야 할 내용입니다. |
수십 명의 국방부 전통(검법)의장대를 지휘하고 있는 지휘관의 옷에는 청룡·황룡이 화사하게 수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구군복에 용을 새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바로 '국왕' 뿐입니다. 용이 상징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듯이 국왕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를 어기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누구나 용 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국방부의 전통 의장대라는 특수한 곳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화려함도 좋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핵심적으로 짚어 줘야 할 곳이 의장대입니다. 더군다나 국왕을 상징하는 문양을 함부로 사용하는 모습을 같은 동양권의 국빈들이 보면 뭐라 할지 자못 궁금합니다.
그렇게 화려함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오히려 용보다는 무관의 흉배에 등장하는 호랑이를 새기는 것이 고증에 충실한 내용일 것입니다.
[등패] 모자 만한 크기... 그걸로 뭘 막으려고?
▲ 맨 왼편 그림은 국방부 전통(검법)의장대가 핵심으로 수련하고 있다는 <무예도보통지>의 24기 중 등패의 매복세 그림이며, 가운데 그림은 지난 4월 행사 사진이며, 마지막 사진은 지난 주 공연 사진입니다. 조선 등패의 크기는 앉을 경우 상체가 모두 가려져야만 전술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
현재 국방부 전통의장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무기들 중 가장 심각한 고증 문제가 걸리는 것은 바로 '등패'의 크기입니다.
지난 4월에 사용했던 등패의 크기는 모자보다도 작은 크기였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는 조금 더 커진 형태지만 <무예도보통지>의 고증규격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크기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등패 크기는 직경 3척 7촌으로 주척으로 환산할 경우 약 78㎝이며, 등패 크기의 핵심은 자리에 완전히 앉아서 방어할 때 상체가 전부 가려져야만 합니다(그림 참조).또 정조시대 당시 3척 7촌의 크기도 작다고 해서 더 키워야 한다고 하였는데, 고증에 충실했다는 국방부 전통의장대에서는 무엇을 보고 고증했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안내 방송에서도 쉼 없이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기예를 중심으로 고증에 입각하여 공연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지난 4월에 사용했던 등패의 크기는 말 그대로 상상초월입니다. 등패 크기가 작아지면 사용하기에는 편하겠지만, 방어력은 그만큼 떨어지게 됩니다.
이미 정조시대에는 화약무기의 발달로 인하여 조총을 비롯한 개인화기가 발달했는데, 등패는 이 조총을 막아내며 적을 공격했던 무기이므로 등패의 규격은 현재보다 훨씬 큰 크기로 변형해야 합니다.
[갑옷 길이] 조선시대 갑옷이 '보일락 말락'?
▲ 왼편의 사진은 현재 국방부 전통의장대에서 입고 있는 갑옷의 모습이며, 오른편 그림은 조선시대 기록화 중 갑주를 착용하고 말을 탄 모습입니다. 이처럼 말을 타고 있을 경우에도 갑옷은 무릎 아래 선까지 내려와야 합니다. |
다음으로, 국방부 전통(검법)의장대가 입고 있는 갑옷의 문제입니다. 갑옷은 기본적으로 무릎 아래 선까지 내려와야 기본적인 방어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국방부 전통의장대에서 입고 있는 갑옷은 요즘 여성들이 입고 있는 원피스형 미니스커트보다 짧은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움직일 때마다 어느 TV 광고에서처럼 '보일락 말락'하며 갑옷이 날아다닙니다. 설마 조선시대의 군사들이 저런 갑옷을 입었을까라는 의심을 누구나 할 것입니다.
더욱이 이들의 갑옷 등판에는 군사용 깃발에서 사용하는 흰 호랑이나 봉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화려함도 좋지만, 그것이 기본적으로 현재 유물로 남아있는 갑옷 또한 상당수가 국방부를 비롯한 관련 유관기관에 있음에도 이런 어이없는 고증이 이뤄진 것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종교전] 소림사 공연을 하는 전통의장대
▲ 왼편 그림은 <무예도보통지>의 기창 그림이며, 오른편 사진은 국방부 전통의장대의 기창 시범모습입니다. 역시 갑옷은 하늘하늘한 미니스커트이며, 시범에 사용하는 깃발과 기창의 크기 역시 고증에 맞지 않습니다. 그림과 사진을 비교해 보시면 쉽게 알아 볼 수 있습니다. |
현재 국방부 전통의장대 시범 중 마지막은 몇 가지 병기의 이종교전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월도와 장창의 교전 그리고 등패와 장창의 약속 교전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거의 중국 소림사에서 하는 방식으로 무기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공연을 위하여 만들어낸 보여주기식 공연입니다.
이는 대표적으로 무술마케팅을 하고 있는 소림사에서 추구하는 무예 연무 내용이며, 실제로 중국 무술기예단의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게] 2.4㎏월도, 3m장창을 척척 드네?
또 월도의 경우 그 제원 문제(전장길이 9척 2촌으로 약 193㎝, 무게는 3근 14량으로 약 2.4㎏)로 인하여 그렇게 가볍게 사용할 수 없으며, 장창(길이 1장 5척으로 주척 환산일 경우 약 312㎝, 영조척 환산일 경우 약 460㎝)도 전장길이 3m가 넘는 길이인데 제대로 된 고증이었다면 이러한 움직임은 결코 나올 수 없습니다.
국방부 전통의장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장대
▲ 등패와 창, 월도와 창 교전의 모습은 거의 중국식 무술기예단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사진 속에 등장하는 규격의 창은 아예 없습니다. 오히려 <무예도보통지>에 등장하는 곤방교전이나 편곤교전 및 검교전을 보여주는 것이 고증에 맞을 것입니다. |
지금까지 무예사 고증과 관련하여 몇 가지를 짚었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한 손으로 칼을 쓰는 본국검법이라든지, 봉술의 중국식 찌르기 등 실제 기예에서도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사회자의 안내 설명 중 정조시대에 완성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십팔기라고 했는데,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것은 스물네 가지의 24기입니다.
국방부 전통의장대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장대입니다. 만약 그곳에서도 대한민국의 제대로 된 전통 흐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어느 곳에서 우리의 전통을 알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중국식 무예 시범하는 광경을 만약 중국의 국빈들이 봤다면 얼마나 실소를 금치 못했을까요?
현재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면 용산 전쟁기념관 앞 광장에서 의장대의 화려한 공연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대다수의 관객은 놀랍게도 유치원생들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이 나라의 미래가 바뀔 수 있습니다.
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방부만큼은 제대로 된 전쟁사 무예사 고증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수백 수천년 동안 이 땅을 지켜온 선배 무인들에 대한 기본 예의 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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