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중국의 동북공정 등 동북아 3국의 영토분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한 시민단체가 9월4일 ‘간도의 날’을 선포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25일 사단법인 간도되찾기운동본부(이하 간도본부)는 “일본과 청이 불법으로 간도협약을 체결한 날이 1909년 9월4일이었다”며 “온 국민에게 중국의 동북공정과 간도영유권 고착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 날을 간도의 날로 정하고 그 선포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날 간도본부는 같은 자리에서 올해로 96년째인 ‘간도협약’의 무효화를 재확인하고 간도지역이 한국의 영토인 것도 천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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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세기 무렵 우리나라와 서양에서 그린 고지도 대부분에서도 간도는 우리 영토로 나타난다. 18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지도인 `도성팔도지도(都城八道之圖)'(사진왼쪽) 함경북도편에는 간도지역이 우리 영토로 분명히 기록돼 있다. 특히 이 지도에는 토문강(土門江)과 두만강(豆滿江)을 분리해서 명기했다. 보곤디(1750년) 지도에서도 옛 만주족 땅이자 한반도와 인접한 중국 간도지역이 18∼19세기까지 우리 영토였음을 입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간도의 날 선포를 위한 간도본부의 움직임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기세에 비해 그 동안 정부의 대응이 미온적이었던 것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간도본부측은 우리 정부가 중국이 지난 2002년 공식적으로 동북공정의 추진을 선포한 이후 계속된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두 차례나 어정쩡한 합의만 했다고 꼬집었다.
지난 2004년 2월 한·중 양국은 고구려사 문제를 학술 차원에서 해결하기로 했지만 중국은 오히려 그 해 8월 자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해방 이전의 한국 역사를 아예 삭제했다. 이 일은 외교문제로 비화돼 결국 양국 간에 5개항의 구두양해 형식의 합의가 재차 이뤄졌었다.
이 같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지방정부 등을 통해 고구려 유적지에 대한 왜곡을 계속 이어갔다. 최근에는 지린(길림)의 용담산성에 고구려는 한(漢)족이 세운 국가라는 공개간판까지 세웠다.
육낙현 간도본부 대표는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말살하고 나아가 간도문제도 자연스럽게 무마시키려 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정부가 침묵으로 대응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간도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이번 선포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육대표는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는 역사와 정치사, 국제법적으로도 명확하다”며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쉽게 인식했던 자기 오류에서 우리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간도협약은 어느 모로 따져도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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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일각에서도 간도되찾기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간도영유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의원모임의 김원웅, 김재홍의원 등이 의원 59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해 9월 국회에서 `간도협약 원천무효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사진=연합뉴스] | 간도협약의 국제법적 효력성에 대해서도 노영돈 인천대(국제법) 교수는 “청과 일본이 간도협약을 맺은 근거인 을사조약 자체가 국제법적 효력이 없기에 간도협약도 무효라고 봐야 한다”며 “을사조약이 설사 유효했다고 해도 조약에 따른 일본의 권한은 외교적 ‘보호권’이었을 뿐 당시에도 조약체결권은 대한제국에게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교수는 “조약의 제3자적 효력 측면에서 간도는 대한제국과 청의 문제이기 때문에 청과 일본이 체결한 협약은 대한제국에 효력을 미치지 못 한다”며 “국제법에서도 조약 등 국가간 약속은 당사국 사이에서만 효력을 가지기 때문이다”고도 부연했다.
노교수는 또 “청일 간도협약을 맺던 날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맺었던 청·일 만주협약은 제2차세계대전 후 중·일 평화조약에 의해 전면 무효화됐다”며 “같은 맥락에서 전후 한·중 양국 간 협의를 통해 간도 땅 반환도 반드시 이뤄졌어야 했던 대목이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간도의 날’ 선포를 반겼다.
간도영유권 문제를 국회에서 주도적으로 제기해온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은 “간도를 어이없이 빼앗긴 지 벌써 한 세기가 다 돼 간다”며 “그 동안 정부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간도문제를 공론화시키지 못 하고 주춤거렸지만 시민단체가 나서서라도 간도가 우리의 고유영토라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의원은 “우리나라가 분단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간도문제는 당연히 제기됐었고 이미 해결될 수도 있었던 일이다”며 “최소한 청·일 간도협약 100년을 맞기 전에 우리 정부가 중국에 간도반환 문제를 포함한 구상서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6자회담 등 당면현안이 더 중요...관련문서는 공개한다”
정부도 간도협약이 법리적으로 무효라는 기본적인 입장에는 동의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간도협약은 법리적인 측면에서 무효라고 할 수 있다”고 밝힌 것.
반면 반장관은 “간도 영유권 문제는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고도 말했다. 정부가 현재 간도의 영유권은 결국 중국에게 있다고 인정하는 다소 어긋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공식입장은 반장관이 국감에서 밝힌 것에서 더 이상 변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중국이 관계된 6자회담과 고구려사 문제 등 당면 현안이 많은 상황에서 ‘간도의날’ 등 민감한 간도 문제를 쉽게 언급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보도에서 ‘간도는 우리 영토이며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공식입장을 담은 1950년대 이승만 정권 시절의 문서를 우리가 비공개 결정했다는 것은 오보이다”며 “그 문서는 공문 차원이 아닌 한 장 짜리 단순한 문서로 다음 주 초에 이 문서를 공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간도본부가 준비하고 있는 '간도의 날' 선포 행사는 9월4일 오후1시부터 약 4시간 동안 종묘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오랜 세월 '사잇섬'이라 불려왔던 땅 '간도'
간도협약은 일본과 청이 1907년부터 1909년까지 2년간 회담을 벌인 결과, 1909년 9월4일 일본이 청나라에게서 남만주 지역의 철도부설과 탄광개발권 등 5가지 이권을 얻는 대신(청·일 만주협약) 간도 영유권을 청에게 넘겨줬던(청·일 간도협약) 역사적 오욕 가운데 하나다.
얼떨결에 중국땅이 돼버린 간도는 해란강과 두만강에 둘러싸인 지형이 마치 섬처럼 보여 조선인들이 ‘사잇섬’의 의미로 간도라고 불러왔다. 대한제국 성립 이후 이 지역에는 1901년부터 일시적이나마 간도관리사가 파견됐었다. 한·일 을사조약 이후에도 대한제국 정부가 간도거주 조선인은 청나라에 납세의무가 없다는 사실까지 공포했던 땅이기도 하다. 각종 고문헌에서도 이 지역은 우리 선조들이 고조선 때부터 고구려, 발해 등 반만년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3500년 가까이 지배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 땅을 연길도라고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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