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채 가시기도 전에 태풍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남쪽엔 태풍 피해가 수월치 않았지만, 철딱서니 없게도(?) 비가 내리면 옛 연인과의 추억이 생각난다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비로 인해 젖어가는 풍경을 보면 그를, 또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촉촉이 젖어갔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 아닐까.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너를 사랑하듯 비는 내린다’ 라는 노랫말도 문득 생각나긴 한다.
그런데 더욱 풍류에 젖어 살던 시절의 우리 옛 그림에서는 이상하게도 비가 내리고 있는 풍경의 그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제 아무리 수묵화를 좋아한다 해도 그림에 일천한 나 역시 그런 그림들을 본 일이 있을 리 만무일 터. 오히려 옛분들은 비가 내리는 순간 보다는 비가 내린 후의 윤습한 분위기의 그림을 즐겨 그렸다.
그중 대표적인 그림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다.
1751년, 종이에 수묵, 79.2 cm × 138.2 cm, 국보216호, 호암미술관
<인왕제색도>는 겸재가 76세 때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겸재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그려졌다는데, 이 그림 역시 겸재의 실력이 절정에 올랐을 때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인왕(仁王)은 서울에 있는 인왕산을 말하는 것이고 제색(霽色)이란 큰 비가 온 뒤 맑게 갠 모습을 뜻하는 것이니, 한마디로 비 개인 인왕산 그림인데 인왕산은 알다시피 산 전체가 백색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 바위산이 특징이다. 그런데 백색화강암을 그리려면 흰색으로 표현해야 하지 않느냐, 나같은 문외한 입장에선 생각 들지만 기이하게도 이 그림은 온통 진한 묵으로 그렸다. 비 개인 후 젖은 바위를 표현했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평을 받는다.
<인왕산봉우리> 흰 바위가 비에 젖으면 거무스름 해짐.
이 그림을 보다보면 감상자의 시선이 어느덧 자연스럽게 우측 밑 부분에 있는 조그마한 집으로 모아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림 감상에서 시선이 모아진다면 그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분명 화가의 치밀한 계산이며 그것이 바로 그림의 주제이자 목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 집은 과연 누구의 집일까. 바로 겸재의 오랜 벗,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1671~1751)의 집(취록헌)이라고 한다. 당시 이병연은 중병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 그림은 친구의 완쾌를 비는 절절한 마음을 화폭에 담은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병연은 이 그림이 완성된 4일 후에 친구의 애절한 바램도 헛되이 세상을 떠난다.
겸재가 사천의 집 주위를 수목들이 호위하듯 빙 둘러 그려낸 것만 보아도 사천이 병을 이겨내고 당당한 소나무처럼 일어나길 바라는 겸재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다.
겸재가 조선후기 진경산수의 거장 이였다면 사천은 일만 삼천수가 넘는 시를 지은 대 문장가이며 진경시인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10대부터 스승인 김창흡에게 배웠던 동문이자 벗이었다.
각각 81세, 84세까지 장수하면서(이병연이 겸재보다 5살 연상임) 한동네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하며 자란 형제 같은 사이였다. 두 사람이 평소 얼마나 애틋했던지는 겸재가 양천(지금의 서울 가양동) 현령으로 부임할 때 이병연이 남긴 전별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자네와 나를 합쳐놔야 왕망천이 될 터인데
그림 날고 시 떨어지니 양편이 다 허둥대네
돌아가는 나귀 벌써 멀어졌지만 아직까진 보이누나
강서에 지는 저 노을을 원망스레 바라보네
* 왕망천(당나라 문인이자 서화가 왕유)
한양에서 멀지도 않는 코앞에 있는 양천으로 떠나는 것인데도 이렇게 애절한 시를 남기다니. ^^
지금의 정서로 보면 약간 유치한 듯 보일 수 있지만, 풍류에 젖어있던 옛사람들의 낭만성이 묻어난다. 우리 조상님들은 그만큼 멋진 분들이었다.
어쨌거나 전별시와 더불어 두 사람은 시와 그림을 주고받길 굳게 약속한다.
겸재와 더불어 시가 가면 그림이 온다는 약속이 있어서
기약대로 가고옴을 시작한다.
내 시와 자네 그림 서로 바꿔 봄에
시는 간장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둘러 대니
누가 쉽고 어려운지 모르겠구나.
이렇게 주고받은 시와 그림을 묶어 놓은 시화첩이 바로 [경교명승첩]이다.
[경교명승첩]은 시와 그림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조선 최고의 서화첩이다. 그곳에 서로 시와 그림을 주고받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인 <시화상간도(詩畵相看圖)>가 있다.
<시화상간도> [경교명승첩]中 1740~41, 비단에 담채, 29 x 26.4 cm , 간송미술관
사천과 겸재가 마주앉아 시와 그림을 주고 받는 모습을 그린 그림.
서로 바로보는 얼굴이 오랫동안 함께했던 지기끼리의 돈독한 표정이 엿보인다.
이처럼 겸재가 지극한 마음을 담아 그렸기에 <인왕제색도>를 보면 산수화의 느낌을 넘어 절망의 심연에서 피어나는 카타르시스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겸재는 평생 갈고 닦은 기량을 이 그림에 다 쏟아 부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웅장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는 사천 이병연을 상징하듯 바위엔 중량감이 넘친다. 꺼져가는 친구의 생명에 대한 절박한 심정을 어찌나 농도 깊게 표현했던지, 이 그림은 조선 진경산수화의 대표작이라는 평을 듣는다.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의 분신 같은 사람이 병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안스럽게 바라보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꼭 병이 아니라도 주변에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스러워하는 지인들도 있다.
훌륭한 예술작품에는 반듯이 진실 된 휴매니즘이 녹아있다는 걸 보여주며, 왜 명작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줄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인왕제색도>를 보면서 주변에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한 통 하면 어떨까.
아니 직접 찾아가 만나서 손이라도 꼭 쥐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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