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수서원은 문정공 정암조광조(1482-1519)와 혜강공 학포양팽손(1488-1545)
을 배향한 서원으로 전남지방에서는 순천의 옥천서원에 이어 두번째로
1570년에 사액받은 서원이다. 정암 은 중종14년(1519) 기묘사화의 화를 입어
능성현에 유배되었다.이때 평소 정암선생을 흠모하고 생원시와 현량과에
함께 등용되는등 여러모로 인연이 깊었던 학포선생도 관직을 삭탈당하여
고향인 능성현에 와 있었다. 이에 자연히 조석으로 만날 수 있게 된 정암과
학포는 서로 강론하면서 의리를 교환하였다. 그러나 정암 선생이 유배된지
1개월후에 사사를 당하자 학포는 은밀히 시신을 거두어 쌍봉사 골짜기 일명
조대감골에 장사지내고 서운태 (서원터) 마을에 모옥을 짓고 춘추로 문인
제자들과 함께 제향하였다.
이후 선조1년(1568)에 정암 선생은 영의정에 추증 되었으며 그 이듬해에는
문정이란 시호를 받았다.이와 때를 같이하여, 조정에서는 정암을 향사할
서원의 건립을 논의하였고, 이에 따라 선조 3년(1570) 다시 능성현령 조시중
의 협조로 천일대 옆(현위치)에 서원을 짓고 죽수란 사액을 받았다.
그 후 1613년 서원을 중수하였고 1630년 도내 유림들과 조정에서는 사계
김장생 등의 발의로 학포선생을 죽수서원에 배향하였다.1868년 죽수서원
훼철령에 따라 훼철되어 위패는 매안하였고, 단만을 마련하고 제향하였다.
1971년 능주의 유리모가 제주 양씨 후손들이 도곡면 월곡리에 죽수 서원을
복원 하였다. 그러다가 1983년 다시 한양조씨 조국조를 중심으로 한, 정암
선생 후손들에 의하여 원래의 위치이자 죽수서원 사액을 받은 모산리에
죽수복원을 추진, 월곡리의 건물을 이건하고 신축하였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30호. 1570년(선조 3)에 창건되었으며,
조광조(趙光祖)의 위패를 모셨다. 같은 해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1630년(인조 8) 양팽손(梁彭孫)을 추가 배향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1년부터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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