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디 지 치 꽃
최근들어 해란초가 가끔 올라 오길래 바닷가이니 당연 찾아 볼 것이라 생각하고 발이 아푸도록 돌아 다녔다. 아무리 돌아다녔었어도 해란초는 보이지 않고 볕만 따갑게 느껴진다.
봄 햇살엔 며느리를 내 보내고 가을 햇살엔 딸을 내 보낸다더니 창이 큰 모자를 눌러 썼지만 그 말과 같도록 봄 볕 치곤 따갑다. 모래위를 걷다가 주변을 휘 둘러 보니 송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론 그곳 송림은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쭉쭉 뻗은 줄기에 기상이 보인다.
숲으로 들어섰다.
뱀딸기 꽃이 자북이 깔린 둔치를 지나 한참을 걸었을까? 두루미 천남성이라 믿으며 쪼그려 앉아서 모양새에 취하여 다리가 저리도록 머물다가 고개를 돌리니 아직은 짙어지지 않는 풀빛 사이사이 보랏빛이 눈에 들어선다. 제법 자란 풀들이 길을 막았지만 산꼴짝 출신임을 몰라서일테지
걸음을 크게 하여 젖히고 들어선 자리 예쁜 꽃들이 다문다문 피어 있다.
사람들은 보랏빛을 일생도록 한번은 격렬하게 사랑한다 하였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늘 보아도 예쁘기만하다. 자연에서 취할 수 있는 빛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공 된 그 무엇들은 쉬이 진력이 나지만 자연의 모두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깊이에 풍덩 빠져질 뿐, 잠시 한눈을 파노라면 지나 갈 낙조의 풍경에 끼어든 보랏빛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야생화 도감을 뒤지다 보면 색으로 구별된 란이 있는데 그곳엔 분홍빛깔, 노란빛깔, 보랏빛, 흰 빛으로 구별이 되어 있다 그 란을 뒤져 보면 마치 즐겨찾기하여 원하는 사이트를 쉽게 접근하듯 쉬이 그 꽃의 이름이며 연루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가 있다.
감동이 머무는 시간을 오래동안 지났다. 어머어머~~어머나!! 이렇게 예쁠 수가 근데 이름이 뭘까? 꽃대장님이신 그린키 아저씨에게루 사진이 섞인 메세지라도 보내어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다. 꾹꾹 눌러 참고 또 참으며 행여 잎사귀 하나라도 놓칠세라 담고 또 담았다.
송홧가루 날리는 오월이어서인지 꽃잎위에 앉아 있는 송홧가루빛이 제 빛을 잠식한 듯하여 얄밉기도 하다. 송홧가루 날리는 오월의 행복이 유독 풋풋한 날들이 많건만 그 꽃잎위에 뿌려진 빛으로 서운함이 돈다. 처음 만난 꽃이기에 제 빛을 볼 수 있을까 하며 후~~불어 보기도 했다.
아들아이에게 마구 자랑을 했다. 엄마가 예쁜 꽃을 담았고, 게다가 처음 본 꽃이고, 이름을 모르며 서울에 가면 아마두 이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엄마의 흥분과는 달리 말없이 웃어 버리는 아들이 서운하다. 같이 그러냐고 해 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춘기의 정점을 통과한 아들아이는 여드름 자욱이 조금 가신 듯한데 엄마의 흥분을 잘라 버릴 만큼 자기에만 집중 해 있다. 서운한 마음까지도 버려야 한다는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의 인내는 극에 달한다. 그러던 중 절로 식어가는 그 흥분의 틈에 아들아이는 어디선가 발견한 꽃들을 일러 준다. 볼볼거리며 모두 뒤지고 다닌 터지만 아들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얼른 따라가 처음 본 듯 담고 또 담았다.
여러가지 마음들이 머물며 그저 길 떠난 기쁨만으로도 만족하리라 생각했던 여정은 끝이 나고 있었다. 보랏빛의 꽃들과 인사를 함으로서 달래며 돌아와선 살아야 할 동안 느껴질 갈증들을 삭이며 적어도 다시 만날 그 날엔 더욱 밝고 환한 웃음을 웃으며 근사하게 담아낼 정도의 내공을 키워 볼 것이라 가볍게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