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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서암정사

고양도깨비 2007. 3. 10. 02:04
 
상상할수도 믿기도 어려운 지리산 서암정사


 



파출소 순찰차와 택시가 지프형 자동차인 것만 봐도 서암정사가 있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은 지형이 꽤나 험한 지역인가 보다. 88고속도로 지리산 IC를 나와 60번 지방도를 타고 칠선 계곡 쪽으로 간다. 뭇 남정네들의 꿈이며 선망의 대상일지도 모르고, 아줌마들의 흥건한 농담에 숨겨 나올 법하여 한번씩은 꿈에서라도 흥얼거려 보았을지 모를 변강쇠타령의 발상지인 백장공원(변강쇠 옹녀공원)을 지나게 된다. 그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게 되면 개울 건너 평평한 논 가운데 느티나무와 어우러진 실상사가 보인다


▲ 지리산 끝자락 칠선계곡에 흐르는 물이 쉬었다 가라고 유혹을 하고 나란한 벌통에서 향긋한 꿀 냄새가 난다

실상사는 얼마 전 새만금을 살리겠다고 전북 부안의 새만금 갯벌부터 서울 광화문까지 800리가 넘는 먼길에 삼보일배를 하며 골수 같은 땀을 퍼붓다 결국 실신까지 하였던 수경스님이 주석 해 계신 곳이기도 하다.
실상사는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한다. 실상사 건너쪽인 60번 지방도를 따라 계속 올라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마천면은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들어서는 입구이기도 하다. 지리산이라는 웅장한 이름에 걸맞게, 자락에 거느린 수많은 계곡과 산동네 중의 하나인 칠선 계곡 쪽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면소재지를 지나 아치형 교각의 다리를 건너 오른쪽 계곡으로 조금 더 들어가게 된다. 길과 나란한 계곡이 마음을 유혹한다. 쉬었다 가라고, 큼직한 바위에 엉덩이 얹고 물에 발 한 번 담가 보라고 유혹한다. 산비탈 밭 두렁에 가지런한 벌통에서 지리산 토종꿀의 달콤함이 눈 맛으로 느껴진다. 흘끔흘끔 눈길주며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왼쪽 비탈 쪽에 벽송사 안내판이 보인다. 지리산 IC부터 이곳까지는 약 18Km가 되는 듯 하다.



▲ 서암으로 들어서는 입구엔 일주문을 대신한 두 개의 커다란 돌기둥이 있다. 돌기둥 뒤쪽의 사천왕들이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는 듯 하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려 핸들 잡은 손에 힘을 줄 때쯤 심상치 않은 바위가 나온다. 절을 다니면서 많이 본 듯한, 험상궂은 표정에 무시무시한 칼이나 창을 들고 있는 그런 모습이 조각된 바위가 양쪽에 있다. 여기서부터 서암정사의 경이로움은 시작된다. 비탈길에 차를 멈추기 뭐해 오르던 길 그냥 조금 더 오르면 넓은 주차장이 준비되어 있고, 더 이상은 차를 가지고 갈 수 없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차를 세워놓고 200여 미터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좌측에 <同歸大海一味水> 우측에 <百年江河萬溪流>란 글씨가 또렷하게 각인 된, 장승처럼 우뚝 선 바위기둥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몇 걸음만 더 들어가면 다시 두 개의 돌기둥이 나타난다. 왼쪽 기둥엔 <調御三千界> 그리고 오른쪽 돌기둥엔 <摩詞大法王> 라고 쓰여있다. 이 돌기둥들이 일주문이며 해탈문이나 불이문쯤 되는가 보다.
참배객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다 보면 키가 5m도 훨씬 넘는 우람한 사천왕상들이 우측 절벽에 일렬로 즐비해 있다. 여느 절들처럼 천왕문에 나란히 두 분씩 서 계신 것이 아니라 큰 바위에 입체적으로 나란히 조각되어 있다.
비록 많은 절들의 사천왕처럼 알록달록한 단청은 되어 있지 않지만 사천왕들의 부릅뜬 눈과 역동적 몸 동작 그리고 바위의 묵직함이 속세에서 묻혀온 잡된 생각과 허황 된 망상들을 다 달아나게 할 듯 하다.



▲ 무지개처럼 생긴 대방광문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한옥 같은 미타전이 보인다. 대방광문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합장삼배하고 고개를 드니 무지개형태의 아치형 문 위에 "대방광문(大方廣門)"이라 쓰여진 돌로 된 큼직한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협곡 같은 입구를 따라 몇 걸음 더 걸으면 대방광문을 지나 화엄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고 보니 주변이 온통 큼직큼직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쯤에서 그럴싸한 전각이 나타날 만도 한데 그렇지 않다. 멀지 않은 곳에 여염집 사랑채 같은 그런 한옥건물이 하나 보일 뿐이다.
건물 벽에 방하제연(放下諸緣)이라고 써진 팻말이 붙어 있다. 아직 버리지 못한 세속의 구연과 근심, 미련과 시기심 그리고 달콤했던 유희적 감각조차 다 떨구라는 뜻인가 보다. 정면에 미타전이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있을 뿐 흡사 오래된 한옥의 가정집 같은 분위기다.
미타전 편액이 붙은 한옥 앞을 지나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저만치 봉긋한 언덕 같은 곳에 극락전(極樂殿)이란 글씨가 보이고 창문이 보인다. 언덕 주변이 참 잘 가꾸어져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 봉긋한 봉우리 형태의 언덕에 굴법당이 보인다. 징검다리를 걷듯 뚜벅뚜벅 걷다 보면 굴극락전에 이르게 된다

안양문(安養門)이라고 새겨진 쪽의 문을 열고 굴법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법당에 들어서면 예를 갖추기 위해 습관처럼 하던 합장도 잠시 잊게된다. "아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는 반문만 계속된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그런 법당이 굴속에 있다.
겨우 정신 차려 합장삼배 올리고 휘둥그래 진 눈에 초점을 모아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자연 동굴을 이루고 있는 바위의 사방과 천장에조차 온통 부처님과 불보살 그리고 그 권속들이 조각되어 있고 그 부처님과 불보살님들의 눈길이 모두 내게 쏟아지는 듯 하다.
굴법당 극락전은 들어서기만 해도 환희심이 넘칠 정도로 굴 전체가 섬세한 조각으로 장엄 된 아미타세계다. 아미타부처님을 중앙에 모시고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 그리고 8대 보살님들과 10대 제자, 나한, 사천왕 등은 물론 용, 연꽃 가릉빈가(迦陵頻伽) 등이 굴법당 벽과 천장 전체를 빈틈없이 빼곡이 메우고 있다



▲ 락전 내부가 눈을 휘둥그래 하게 만든다. 동굴 내부는 틈 하나 없이 전부 조각되어 있다. 정면에 아미타부처님이 제일 안쪽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님이 조각되어 있다

혹시 벽지를 바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법당 안을 단지 작품으로만 표현하자면 20세기와 21세기 양 세기에 걸친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석굴암과 비교를 한다는 것이 역사성으론 어불성설일지 모르나 장엄함이나 정교함과 섬세함이 석굴암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입구 제일 안쪽에 있는 지장보살님이 들고 있는 지팡이만 보아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섬세하다. 지장보살님의 손에 들려있는 구슬은 유난히 검은 색 광채를 띄고 있다. 그 옥구슬만은 다른 돌로 가공을 하여 얹어 놓은 것이려니 하였더니 그 또한 지장보살님과 일체를 이루고있는 원석에서 가공된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돌들이야 아무리 공을 들여 갈아봤자 빛이 나지 않지만 마천석재는 돌 자체가 옥 성분이라서 원하는 형상으로 가공하여 곱게 갈아주면 옥 특유의 광택을 내게 된다고 한다. 지장보살님의 손에 들고 있는 구슬은 바로 그렇게, 곱게 다듬고 갈아서 만들어 진 것이다



▲ 벽면이 이어지는 부분은 물론 천장까지 보살과 권속들이 조각되어 있다

의도적으로 구슬을 만들어 손 위에 올린 것이 아니고 지장보살님과 일체의 돌에 구슬모양으로 조각을 한 후 깨끗하게 갈아주기만 한 것으로 주변의 희끄무레한 색깔과는 완전히 다른 옥 광채로 반짝이고 있다. 곱게 가공하면 옥 광채를 띠는 이런 특성 때문에 마천석재라고 하면 전국에서도 유명하단다.
굴법당이 이곳 서암정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서암정사 굴법당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되는 것은 서암의 모든 불상과 조각품들은 있는 그대로의 돌에 입체적으로 조각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른 돌로 조각을 하여 붙였거나 세운 것이 아니라 돌 하나로 부처님도 만들고, 부처님이 들고 있는 장엄물들도 조각하였다는 점이다.
불경스럽게도 의구심이 많은 기자는 구석구석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혹시 조각을 하여 붙인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못 미더움을 떨구지 못한 채.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원석에 입체적으로 조각을 한 것일 뿐이다.
돌에도 무늬가 있다. 돌을 붙이거나 덧대면 무늬가 어긋나기 십상이며 이음 부분에는 아무래도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아무리 찾아보고 살펴보아도 완전한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음이 틀림없다. 이쯤에서 "나무 아미타불"을 경송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산더미 같은 바위가 묘하게 블록을 쌓은 듯 정리되어 있고 바위 제일 위쪽에 비로자나부처님이 그리고 아래 세 개의 바위에 문수보살님과 보현보살님 그리고 선재동자가 조각되어 있다.

극락전을 나와 다시 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그곳엔 비로전이 있다. 맞추기 블록을 쌓아 놓은 듯 묘하게 놓여진 엄청난 규모의 바위들, 그리고 그 바위에 각인 된 제불 보살님들의 섬세한 미소와 표정!
비로전 또한 불심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저절로 우러나는 감탄에 의하여 손을 모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삼각을 이루고 있는 네 개의 커다란 자연석 제일 위쪽에 비로자나부처님이 조각되어 있고 이 돌을 받치고 있는 아래 세 개의 돌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그리고 선재동자가 조각되어 있다.
비로전 입구, 비로자나부처님 좌측 커다란 바위엔 역시 산신님과 독성님이 살아계신듯 조각되어 있다. 산신님이 거느리고 있는 호랑이의 콧수염이 움직이고, 독성님 옆 꽃사슴의 숨결소리가 들릴 듯 조각들이 섬세하다.
서암을 만들고자 원을 세우고 원력을 모은 분은 원웅(元應)스님이지만 그 일을 받들어 10여 년 동안 동굴에 부처님과 불보살 그리고 그 권속들을 조각한 사람은 홍덕희라는 분이라고 한다. 원웅스님이 밑그림을 그리면 석공 홍덕희님이 정으로 한뜸한뜸 자수를 하듯 조각을 하였다고 한다.



▲ 독성님과 선녀 상이 조각되어 있다. 꽃사슴의 숨결이 들릴 듯 섬세하다

한 때 다른 석공들이 일을 하기도 하였지만 불심이 없거나 미약한 관계로 제대로 불사가 진행되지 않아 모두 그만두었다고 한다. 나이 33세인 홍덕희님은 91년에 서암에 들어와 10여 년 동안 햇볕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며 굴법당 조각에 전념하다 44세가 되어서야 제대로 햇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홍덕희님은 서암정사보다 조금 더 남쪽인 사천근방에서 또 다른 조각으로 불심을 다듬고 있다고 한다.
서암정사는 주지인 원응스님께서 1960년 초 벽송사로 오시면서 원력을 세워 현재 40여 년째 진행되고 있는 원력 불사의 결정체라고 한다.
6·25때 지리산에서 무고히 죽어간 수많은 원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을 기원하며 아직도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의 화합과 통일을 기원하고자 불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좀체 수그러들지 않아 민심을 피폐케 하고 있는 동서 지역감정의 발로가 되는 모든 이기심과 분열을 없애고 부처님의 품안처럼 평안하고 자비심으로 살자는 마음에서 발원을 했다고 한다



▲ 미타전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도 부처님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화엄도량인 서암에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성보는 국내에서 유일한 80권의 화엄경 금니사경전 (金泥寫經典)이라고 한다. 금니사경전은 원응스님이 85년에 시작해 참선하는 사이사이 감지(紺紙)에 금분으로 화엄경 60만 자를 옮겨 쓴 것으로 12년만인 1997년에 완성된 경전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서암엘 가면 볼 것도 많고 놀랄 것도 많다. 굴피로 지붕을 이은 토속집도 볼 수 있고 답답하고 세파에 찌들어 눅눅해진 마음을 후려하게 해줄 건너 쪽 지리산과 계곡도 한눈에 넣을 수 있다.
전문가들도 쉽게 구분하지 못 할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와 복사가 가능한 것이 요즘 디지털장비이며 기술이다. 그러나 그 어떤 디지털장비와 기술로도 감히 연출하지 못할 장엄한 부처님 나라를 굴속에 새겨 넣고 혼을 불어 놓은 것은 역시 인간들의 숭고한 정신이고, 하늘도 탄복하고 부처님도 감탄시킬 수 있는 혼신을 다한 지성(至誠) 이라고 생각된다



▲ 돌탑 저 아래로 지리산 끝자락을 이루고 있는 추성리와 계곡이 한눈에 보인다

바람조차 술술 빠져나갈 걸망이지만 육감을 감탄케 하는 서암에 깃 든 불심과 사람들의 정성을 한 걸망 담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떨굴 수 없다. 이 또한 탐심임을 알기에 허허한 마음으로 뚜벅뚜벅 대방광문을 다시 나섰다. 반문이 끊이질 않는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이며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 가능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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