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 사건 발생; 1975년 6월 10일 새벽
▶ 피해 규모; 4억 1,326만원--소방서추산
▶ 인명 피해; 부상 9명
▶ 2차 사건 발생; 1977년 9월 14일 오후 9시 50분경
▶ 피해 규모; 1억 5천여 만원--소방서 추산
20억원--상인들 추산
남대문시장은 1960년에도 큰 불이 났는데 1970년대에도 2차에 걸쳐 큰 불이 났다. 먼저 불은 1975년 6월 10일 새벽에 일어났고 나중의 불은 1977년 9월 15일에 일어났다.
1975년 6월 10일의 불은 새벽 0시 18분 D동 1층 계단 옆에 설치되어 있는 두꺼비집에서 일어났다. 불은 삽시간에 1층 아동복, 타월, 메리야스, 이불점포 등으로 번졌고 이어 2, 3층과 지하 1, 2층으로 번졌다.
3층까지는 층마다 방화구획셔터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상품들이 계단까지 쌓여 셔터가 내려져 있지 않았고 건물 중앙의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연통구실을 한데다 3층 역시 양품점, 양장점, 가구점 등 가연성 물질이 많아 불길이 쉽게 번졌다.
1층 전체가 불더미 속에 싸인 동안 지하계단을 통해 불길은 지하상가로 번져 생선, 채소, 좌판대, 간이음식점 등이 모두 타버렸다. 불길은 오전 8시경까지도 건물 안에서 맹위를 떨쳐 연기와 타는 냄새가 시장 일대를 뒤덮었으며 건물 밖 7∼8m 지점까지 열기가 후끈거렸고 칸막이와 유리창 터지는 소리가 쾅쾅거렸다.
오전 8시반경과 10시 20분경에는 옥상가건물의 블록벽이 20여m 가량 무너져 땅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불이 나자 채 1시간도 못돼 상인 1천여명이 몰려 나와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었고 경찰은 상품을 꺼내기 위해 상점으로 접근하려는 상인들을 제지하느라 애를 먹었다.
발화 5분만에 신고를 받고 소방관들이 현장에 달려 왔으나 1층 점포들이 모두 철제셔터를 내리고 퇴근하여 소방관들은 도끼로 셔터를 부수고 소방호스를 대는 등 초기 진화작업이 늦어졌다.6대의 고가사다리차에서 2, 3층 창을 통해 호스를 댔으나 상가 자체가 대형 건물이어서 소방호스의 물길이 건물 내부 깊숙이까지 들어가지 못해 불길을 잡을 수가 없었다.
또 의류, 이불 등 화학섬유가 타는 연기와 독한 가스가 시장 전체에 번져 접근이 힘들었다. 소방관들은 불이 3층에 번지지 않도록 2층에 집중 진화작업을 벌였으나 오전 2시경 3층 가구부로, 오전 4시경에는 옥상가건물의 제품공장에까지 번졌다.
불이 난 중앙상가 D동은 대지 618평에 연건평 2,750평의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모두 822개의 점포와 좌판이 있는데 지하 2층은 변전실, 지하 1층은 생선, 채소 등을 취급하는 식료품부로 526개의 점포와 좌판 1층은 아동복, 숙녀복, 메리야스, 이불 등 의류부로 106개의 점포, 2층에는 침구류, 와이셔츠, 양장점 등 155개 점포, 그리고 3층에는 중소기업가구총판장 등 40개 점포와 창고, 기원, 제품공장 일부가 들어 있고, 3층 옥상은 가건물로 30여개의 제품공장이 있었다.
이 시장은 지난 1954년 6월 23일에 대화재로 전소된 후 A동부터 G동까지 7동의 3층짜리 건물을 지어 시장을 개점했다가 1968년 11월 C, D, E동이 전소되어 시장회사측은 1970년 4월 16일 이번 불로 전소된 C, D동(중앙상가)을 다시 지어 개점했었다.
경찰조사 결과 이번 불로 인한 피해는 재산피해 4억 1,326만원과 인명피해로 9명의 부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되었다.
두번째의 불은 1977년 9월 14일 오후 9시 47분에 일어났다. 불이 난 곳은 남대문시장 C동 1층으로 불을 처음 목격한 야간경비원 김덕현은 동료경비원 2명과 함께 건물내부를 순찰하던 중 건물 서쪽끝에서 매캐한 냄새가 나 다가가 보니 남자 기성복부 판매점인 6층 상점 셔터문 위쪽에서 흰 연기와 함께 불길이 솟는 것을 발견 즉시「불이야」외친 다음 건물 동편 복도 셔터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나와 화재신고를 했다.
그 동안 다른 경비원 2명은 1층 중앙부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는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하여 불을 꺼보려 했으나 소화전 위치와 발화장소가 30여m 떨어진데 비해 호스길이는 15m 밖에 안돼 손을 쓸 수 없었으며, 건물의 외부 출입문셔터가 모두 내려져 있어 불길은 순식간에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번졌다.
1층과 마찬가지로 2층 점포도 대부분 인화성이 강한 화학섬유, 포목, 주단, 이불가게가 잇닿아 있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발화 20여분만에 4층까지 치솟았다. 2층으로 옮겨 붙은 불은 15일 오전 1시경 2층을 전소시킨데 이어 오전 3시경엔 3층, 4시경엔 4층까지 모두 태웠다. 불이 나자 C동 옥상에 있는 피복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30여명의 공원들은 D동으로 통하는 계단을 통해 긴급대피했다.
신고를 받고 긴급출동한 소방본부는 서울시내 소방차 66대와 고가사다리차 2대, 소방관, 경찰관 등 323명이 출동, 진화작업을 폈으나 한평 안팎의 상점들이 합판이나 목재 칸막이로 성냥갑처럼 붙어있고 인화성이 강한 의류와 화학섬유 등이 가득차 삽시간에 번지는 불길을 쉽게 잡지 못했다. 더구나 화학섬유가 타면서 유독성 가스를 내뿜은데다 상점 셔터문이 모두 내려져 있어 소방관들이 15일 오전 4시까지도 건물 속으로 들어가지 못해 진화작업이 더욱 늦어졌다.
발화시간이 상인들이 모두 귀가한 후여서 인명피해는 많지 않았으나 진화작업 중 미8군 소방대 이재곤(李在坤) 부대장이 건물 옥상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미8군 병원으로 급히 옮겼으나 숨졌고, 역시 진화작업 중이던 중부소방서 김달수(金達洙) 경장도 건물에서 떨어진 각목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또 9시반경 소방작업을 지휘하던 중부소방서 방호과장이 질식해 병원에 옮겨졌으며, 11시 45분경엔 1층 안에 들어가 작업하던 중부소방서 장비계장 박달수(朴達洙) 경위가 갑자기 셔터가 떨어져 머리를 맞아 중상을 입고 병원에 옮겨 치료를 받았다.
경찰조사결과 이번 불로 재산피해는 1억 5,000여만원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상인들은 추석대목 상품을 많이 들여 놓아 20억원 가량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재 후 이번 화재의 문제점이 지적되었는데 1975년 6월 D동 화재 후 소방당국은 상가측에 10여차례나 개수명령을 내렸고 1977년에만도 세차례나 소방시설명령을 내렸으나 상가측은 지하층의 스프링쿨러와 2, 3층의 옥내 소화전 4개, 4층의 2개와 자동화재탐지기만 보완한 정도에서 이번 화재를 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건물 주변엔 저수조가 2개(공설 1, 사설 1) 뿐으로 진화작업 중 물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시장입구의 진입로가 좁아 소방차가 10대 이상 들어 올 수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으며 건물 자체와 점포마다 철제셔터가 내려져 있어 유사시 밖에서 쉽게 열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그리고 화인은 당초 누전이 아닌가 여기기도 했으나 조사결과 담배꽁초를 잘못 버린데서 오는 실화인 것 같으나 소방본부가 보관하고 있는『소방연혁』에 의하면 방화로 기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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