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농로중 지난초생 산심일장 인정향투
추사 묵난
봄 깊고 이슬 많아 땅 풀려 풀 돋는다
산깊고 해 긴데
사람자취 고요하고 향기만 가득하구나.
김정희
본관 경주. 자 원춘(元春).
호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
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1809년(순조 9) 생원이 되고,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충청우도암행어사·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秋史體)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그는 함흥 황초령(黃草嶺)에 있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巡狩碑)를 고석(考釋)하고,
1816년에는 북한산 비봉에 있는 석비가
조선 건국시 무학대사가 세운 것이 아니라 진흥왕 순수비이며,
‘진흥’이란 칭호도 왕의 생전에 사용한 것임을 밝혔다.
또한 《실사구시설》을 저술하여
근거 없는 지식이나 선입견으로 학문을 하여서는 안 됨을 주장하였으며,
70세에는 과천 관악산 기슭에 있는
선고묘(先考墓) 옆에 가옥을 지어 수도에 힘쓰고
이듬해에 광주(廣州) 봉은사(奉恩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다음 귀가하여 세상을 떴다.
문집에 《완당집(阮堂集)》,
저서에 《금석과안록(金石過眼錄)》
《완당척독(阮堂尺牘)》 등이 있고,
작품에 《묵죽도(墨竹圖)》 《묵란도(墨蘭圖)》 등이 있다.
韓山草堂에서 천한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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