友人頌 (우인송 : 친구를 칭찬 한 글)
平生我自樂 友有數三知
苟許一心契 何關千里離
寂時每會見 離處好相隨
有斯眞箇趣 時賦活歌詩
檀紀四二六七年 在於京城監獄時 因惡形有一時失神之事 作此友人頌而自慰之者也 (遲耘 作)
지운(遲耘) 선생께서 말씀하시었다.
"한번은 이 시(詩)를 의제(毅齊)선생이 보더니 "우유삼인(友有三人)중에 나도 들어가겠구먼" 하며 좋아 하데 나는 말하였어.
"의제는 나와 사상이 같지 않으니, 삼인중에 못들어 간다고 하니 의제 선생이 많이 서운하다고 그랬어.
나는 광주가면 의제와 때론 서로 귀잡고 이마 맛대고 볼 비비고 마치 연애하듯 그랬어, 친하고 가까운게 그랬어.
참 좋은 분이여."무운(無耘: 또풀) 이 다시 물었다.
"의제 선생하고는 언제부터 아셨는지요?"
지운 선생께서 말씀하시었다.
"일본서 공부할 때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 부터지 그 때 의제는 붓 팔아서 고학했지. 문방구, 필기구 같은 것. 팔아서 공부했어.
그런데 인촌(人村)이 도와줬을거야. 의제는 그림 솜씨가 좋다고 다른 대학으로 보냈어 그림공부하러 보냈을 것이여.
그 때 친할거 아니여 같은 고향이고 그랬어.
나는 양원모 동아일보 상관한 이 양원모와 한방을 썼어. 의제선생이 <단군성전> 짓는다고 애 많이 썼어.
무등산에 단군성전 짓는다고 그림그려 팔고 해서 돈 많들어 놓고 시작 할려고 하니 교회사람들이 반대했었어.
그 부인도 반대 했었어. 그 부인이 순천사람인데 기독교에 맹렬하거든."
무운이 물었다.
"왜 반대 하였습니까?
지운 선생깨서 말씀하셨사.
"단군이 국조(國祖)아니여!, 조선사람이 조상을 숭배하면 자기들은 하나님의 자손이라고 하니 그 근본이 흔들리거든
그러니 단군성전 짓는일을 미신이니 우상숭배니 하는 것이여."
무운이 말하였다
"우유삼인(友有三人)은 누구 입니까?"
지운선생깨서 말씀하시었다.
"누군고 허니, 윤자형이하고 박진순이하고 이봉수하고 또 많이 있어. 김립이도 생각나고 이동휘 영감도 생각나데.
내가 이 사람들 지극히 못잊고 죽겠어. 그런 사람이 있어.... 서울에 있는 와세다대학 동창 동아일보 상관한이(만든이)
양원모와 허의제는 나와는 우정으로 단순히 친구 이재그들과는 들도 없는 친구지, 그러나 삼인(三人) 중에는 못들어 가
내가 감옥에서 죽었다 살아나서 깨어보니 죄송한 말로 아버지와 형제보담 먼저 그 사람들이 생각나드라 말이여."
무운이 말하였다.
"그래서 우인송이라 이름하셨습니까?
지운 선생깨서 말씀하시었다.
"그려 우인송이여 광주 의제 선생께서 이 시(詩)를 보고 우인송이라 하라하데." 무운이 말하였다.
우인송을 한번 해석 해 주십시요.
"평생을 내가 혼자 즐거워 하노니 왜? 그런고 허니. 벗이 두서넛 지기가 있단 말이여. 진실로 허락해서 서로 합해서
한 마음이 만일 한가지라고 한다면 어찌 천리 떠난 것이 상관 될 것이 있느냐 말이여. 감옥 안에서 밖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게 그 사람들도 나를 생각 할 것이다. 적막 할 때에 매양 만나 본단 말이여. 내가 감옥에 있지만 그 친구들을 만나 보거든 정신상으로 어려운 일을 생각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 친구들이 나 대신하려니(독립운동) 이렇게 호상스럽게 나 대신하려니 이렇게 호상스럽게 따라간다. 이러한 참 취미를 가지고 내가 때때로 산 노래와 시를 짓는다.
" 이렇게 지었었단 말이여."
무운이 말하였다.
"이 시(詩) 누가 지은 겁니까?"
지운선생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지었어. 그런게 감옥에세 고문에시달려 잠간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 나 가지고 내가 지은 것이여, 그런데 이것 봐 내가 저 서력(西曆)안써 아! 우리는 2300년 역사가 분명히 더 있어. 그런데 무더러 서력을 써 그런게 4267년이여 그 해가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에 있을 적에 악형으로 인해서 한 때 죽었다 살아 났단 말이여. 그때에 이 시가 생각났어. 그뒤에 이것을 허선생(허백련화백)이 보고 '우인송'이라 하라고 하데 친구를 칭찬한 글이라고 이 글 이름을 우인송이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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