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철희] 북한은 미국의 선제 정밀공격(Surgical strike)을 두려워한다. 외무성 성명과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미국을 전쟁광으로 묘사하면서 선제공격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는다.
지난달 20일 노동신문 논평에서는 "미국은 우리나라를 선제공격의 기본 목표로 정하고 무분별하게 날뛰면서 조선반도 정세를 극도로 첨예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북한이 국제사회가 '레드 라인(Red Line.금지선)'을 넘는 것으로 못 박은 핵 실험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보 당국은 이르면 조선노동당 창당일인 10일 핵 실험을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핵 실험은 무모함의 산물일까, 아니면 미국이 정밀 타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 것일까.
군사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도박이 치밀하게 계산됐다고 분석한다. 북한은 핵 실험을 강행하더라도 미국이 정밀공격에 선뜻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관측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미국의 정밀공격이 쉽지 않다고 보는 근거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미국이 최첨단 무기체계를 동원해 북한의 핵시설을 정밀공격할 경우 주변국에 방사능 낙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든다. 바람의 방향을 계산해 공격하더라도 인접국인 중국과 한국은 물론 일본에 낙진 피해가 예상돼 국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도 정밀공격의 걸림돌이다. 북한이 공격을 받으면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에 대해 보복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전면전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대규모 전면전을 수행할 병력 차출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경수 명지대 교수는 "부시 행정부는 더 이상 전쟁의 수렁에 빠질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셋째는 한국과 중국의 반대다.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1994년처럼 끝까지 북한 공격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 중국도 한국 못지않게 반대할 것이 예상된다.
넷째는 미국이 11월 7일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대규모 군사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상황을 내다보고 핵 도박을 벌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북한은 특히 부시 행정부와의 대화를 포기하더라도 차기 정부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핵 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연구원은 "미국의 군사력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 정밀공격이 가능하다"며 "그러나 수많은 정치.군사.외교적 문제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북한이 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을 제대로 읽지 못해 핵 실험 카드를 꺼내는 도박을 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북한이 핵 실험을 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소 다른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밝혔듯이 언제든지 정밀 타격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영국의 핵 전문가인 존 라지 박사는 지난해 5월 "미국은 B1 스텔스 전폭기 등을 동원해 북한 핵시설을 공격하는 작전계획을 수립해 놨다"고 소개했다.
미사일 발사 이후 '선제공격론'을 주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신임 총리가 이끄는 일본도 94년 북한 선제공격을 위해 항공자위대가 모의훈련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철희 기자 ch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