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왕릉 보기]
= 여기를 클릭 하세요=
조선시대 묘제를 보면 왕실의 묘는 능, 원, 묘로 엄격한 구분이 되어 있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고, 원은 왕의 사친, 왕세자와 그 비의 무덤, 묘는 대군.공주.옹주.후궁.귀인 등의 무덤으로 위계에 따라 그 명칭을 다르게 하였다
조선시대의 능은 서울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으며, 현재 조선왕조의 무덤들은 모두 109기에 이른다. 능 44기, 원 13기, 묘 52기가 남아 있다.
왕이 승하하면 이조에서는 빈전도감, 국장도감, 산릉도감을 설치하고 그 직무를 정한다.
빈전도감은 승하한 임금의 옥체에 관한 지밀한 직무를 맡는다. 소렴, 대렴 때에 필요한 수의와 홑이불 등 각종 물품들을 준비한다.
국장도감은 관과 상여 등에 해당되는 재궁, 거여 그리고 부장품들을 준비하여 주요 임무는 무엇보다도 궁궐에서 왕릉까지 이르는 발인 행렬을 책임지는 것이다. 구성 직책으로 예조판서와 호조판서 그리고 기술관리청인 선공감과 네 명의 당하관에 기술직 관원들을 두었다.
산릉도감은 왕릉 현장에서 토목공사, 석물 조성과 건축물 조영 등 가장 힘든 역사를 담당하던 기관이다.
이렇게 설치된 빈전, 국장, 산릉도감의 우두머리들을 제조라 하여 빈전도감제조, 국장도감제조, 산릉도감제조라 칭했고, 세 명의 제조들을 총괄.관장하는 총호사는 주로 좌의정이 맡았다.
조선시대 왕릉의 택지는 고려시대부터 성행하여 온 풍수지리설에 따라 상지관이 추천하면, 왕이 친히 현지에 나아가 지세를 살피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명당이란 배산임수의 지형에 영험한 맥이 흐르다 멈추는 곳이라고 한다. 북쪽의 높은 산을 주산으로 하여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가 있고, 남쪽에 안산, 묘역 안에 천이 있어 물이 동쪽으로 흘러 모아지는 곳이다. 이 묘역 안의 명당에 지맥이 닿아 생기가 집중되는 곳을 혈이라 하는데, 이 혈에 관을 묻고 봉분을 조성했다.
능은 또한 좌향(坐向)을 중요시 하였는데, 좌란 혈의 중심이 되는 곳이고, 좌의 정면이 되는 방향이 향(向)이다.
능의 뒤쪽에는 배산이 있고, 경사지 밑부분에 동.서.북 3면으로 곡장을 두르고 곡장 안에 봉분을 만들었다. 봉분 밑으로는 12각의 호석을 둘러 봉분을 보호했는데, 이를 병풍석이라 한다. 병풍석은 지대석 위에 우석을 놓고 사이사이에 면석 12기를 세웠는데, 면석에는 중앙에 12방위를 담당하는 십이지신상을 해당 방위에 맞게 양각하였다. 이 십이지신상은 모든 방위의 외침으로부터 왕릉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병풍석이 감싸고 있는 봉분의 주위는 다시 난간석으로 둘러 보호했다. 난간석은 망주석 모양의 제일 높은 기둥인 석주, 그 사이를 가로질러 접근을 막는 죽석, 죽석의 중간에 받쳐둔 작은 기둥인 동자석주로 구분되었다.
난간석 바깥으로는 석양 4기를 동서로 나누어 세우고, 석호 4기를 북쪽에 2기, 동.서의 석양 사이에 하나씩 두어 봉분 밖을 향하게 하였다. 석호는 능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석양은 사악한 것을 피한다는 의미와 함께 명복을 비는 뜻을 담고 있다. 추존된 왕릉의 경우 석호와 석양의 수를 반으로 줄여 일반 왕릉과 차등을 두었다.
봉분 바로 앞에는 상석을 두었다. 상석 아래에는 귀면 모양을 새긴 고석이 상석을 받치고 있는데, 험상궂은 얼굴을 한 귀면 중에는 4개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상석 좌우에는 망주석 1쌍을 세웠고, 이보다 한 단 아래에 장명등을 세웠다. 장명등은 초기에는 팔각 지붕을 하고 있다가 차츰 사각형 지붕으로 변하였다. 장명등 아래에는 양쪽에 문인석 하나씩과 석마 한필씩 각각 세웠고, 그 아래에는 무인석 1쌍과 석마 한필씩 세웠다.
봉분 정남 산기슭에는 정자각을 조성하였다. 정자각은 제향을 준비하는 건물이었다. 정자각에 오르는 층계는 동쪽과 서쪽에 있는데, 이는 동입서출의 뜻이 있다. 정자각 뒤 서쪽 제향 후에 축문을 태워 묻는 방형의 석함을 만들었는데, 이를 예감이라 하였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비각을 세웠고, 비각의 아래에는 수복방을 두었다. 정자각 뒤쪽으로는 작은 동산 모양을 흙더미로 조성한 강(岡)이 있다. 강은 사초지라고도 부르며, 사초지 위에 오르면 장대석이 놓여 있는데, 강은 조선 왕릉에서만 볼 수 있다. 또한 정자각 정면으로 참도가 깔려 있고, 참도가 시작되는 곳에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세워졌다. 후대의 왕들이 제사를 지내러 능에 연을 타고 올 때에도 홍살문에서 땅에 내려 오른쪽에 있는 배위에서 절을 하고 능으로 들어갔다. 홍살문 밖 능역에 있는 재실에는 참봉이 능의 수호관리를 위하여 상주하였다.
능의 형식은 분묘의 조성형태에 따라 보통 단릉, 쌍릉, 삼연릉, 동원이강릉, 합장릉으로 나뉘어진다. 단릉은 왕이나 왕비 중 어느 한 분만을 매장하여 봉분이 하나인 능을 말하고, 상릉은 왕과 왕비를 하나의 곡장 안에 모셔 봉분이 나란히 2기로 조성된 능을 말한다. 삼연릉은 왕.왕비.계비 등 봉분 3기를 나란히 조성한 능을 말하고, 동원이강릉은 왕과 왕비의 능을 정자 각 배후 좌우 두 언덕에 각기 한 기씩 조성한 능을 말하며, 합장릉은 왕과 왕비의관을 함께 매장하여 한 개의 봉분으로 조성한 능을 말한다.
원과 묘의 경우에는 봉분, 곡장, 상석, 정자각, 재실 등 대부분 능과 같은 구조를 갖추고 있으나 왕릉보다 규모가 작고 봉분 밑에 병풍석과 난간석, 무인석이 생략되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의 문화와역사 > 역사 바로알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구려의 후예 "라우족" (0) | 2007.03.28 |
---|---|
중구 사서속의 고구려 (0) | 2007.03.28 |
양산 통도사 / 극락보전 벽화 (0) | 2007.03.26 |
"살수대첩" / 살수의 진실 (0) | 2007.03.22 |
한민족의 기원 (0) | 2007.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