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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시원은 한민족

고양도깨비 2007. 3. 22. 13:20

 

 

 

  인류의 시원은 한민족 그 증명

 

                 고인돌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르는데 기원전 7세기경 신석시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전세계로 전파된 한민족문화유산이다.

 

동일한 유적의 분포지역은 역사학적으로 동일한 민족이 이동하면서 만들어진 문화로 본다. 즉 고인돌을 통해 인류의 흐름을 보자면 기원전 7세기 시대부터 기원전 2세기시대까지의 세계적 유적으로써 한반도에서 인류가 시작되어 중국 랴오닝성과 산둥반도 및 일본 규슈[九州], 북유럽·서유럽·지중해 연안·북아프리카·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는 바,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나,한국의 고인돌과 유사한 형태로써 그 형태적의미를 볼때 한민족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가 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고인돌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면

북방식과 남방식,개석식등으로 분류하는데 모두 한반도에 있다.

 

고인돌은 자세히 보자면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대체로 한반도 중부 이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후자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을 각각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지하에 묘실을 만들었으나 남방식 고인돌과는 달리 돌을 괴지 않고 묘실 위에 상석을 바로 올린 고인돌도 있는데, 이를 개석식 혹은 변형 고인돌이라고 한다.

 

고인돌의 연구에서는 지하의 묘실 구조와 축조방법을 중시하는데, 연구자에 따라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이렇게 북방식·남방식·개석식 등의 3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북한 학계는 고인돌에는 한 구역 안에 2~3기의 고인돌을 나란히 세우고 상석 높이까지 돌을 덮어 묘역을 구성한 형식의 고인돌과,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의 두 유형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각각 침촌리형과 오덕형 고인돌로 부르며 전자가 시기적으로 더 이르다고 본다.

 

고인돌 각 형식 간의 시간적 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북방식이 앞선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치를 근거로 볼때 신석기시대에 이미 고인돌이 사용되었다 보이며 이후에 고인돌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시기가 대체로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움무덤[土壙墓]이 등장하기 이전인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요즘 학계의 일반적 판단이다.

 

한편, 고인돌이 만들어진 문화적 연원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고인돌은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 분포하나, 황해도·전라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으며 한 곳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어 분포하는 놀라운 경우도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전라북도 고창에서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이 최남단의 것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전라도 지방에 밀집 분포하며, 경상도와 충청도 등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많이 보인다. 한편,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가히 한반도가 인류문명의 발생지라고 할수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일본 규슈[九州]지방에 분포하는 고인돌은 죠몽[繩文]시대 말기에서 야요이[邇生]시대 초기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한국계 유물과 함께 발견되고 있는바, 일본 야요이문화가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증명한다. 고인돌에서는 간돌검과 돌화살촉이 주요 부장품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민무늬토기와 붉은간그릇 등 토기류와 청동기가 부장된 경우도 있어 역시 모두 한민족의 유품이다.

 

고인돌의 축조에는 거대한 돌의 운반과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로 하였기때문에 이들이 족장(族長) 이나 지배자들의 묘(墓)라는 주장에 이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