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제의 중국대륙진출 단순한 설일까 사실일까?
백제의 중국대륙은 이전부터 끊임없시 주장되었지만 현 사학계에서는 이것을 단순한 설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백제는 분명 중국대륙에 진출하였고 중국 역사책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다가 동남아 어떤 부족은 현 우리가 갖고 있는 풍습(널뛰기,절구 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 사학계 대부분의 학자들은 일제시대 우리의 역사를 말살시킨 이마니시류의 수제자 이병도와 그의 제자들로 구성되었기에 우리의 찬란했던 고대사들을 그들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김부식 이 인간 또한 백제의 중국대륙 지배를 기록하지 않았지요 거기다가 고구려와 백제는 당나라에게 대항해서 멸망했다는 정신나간 소리를 해댔지요
김부식과 현 사학자(이들은 식민사학자)들 때문에 동방의 로마제국 백제가 동방의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2.백제의 중국대륙 지배의 근거
중국의 역사책-송서,남제서,양서,구당서,자치통감,통전,남제서,북제서에 기록
현 중국 산동성에 백제라는 지명 있음
중국의 역사책 송서,남제서,양서,통전의 기록들
"백제는 백가제해에서 온 말로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하자 백제 역시 바다건너 요서와 진평 이군을 차지하여 백제군을 설치했다.
구당서 백제전
"백제의 영토는 서로는 바다를 건너 월주에 이르고 북으로는 바다를 건너 고구려를 접하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일본)에 이른다"
여기서 백제의 서쪽 영토가 월주라고 기록되었는데 월주는 현 중국 양쯔강 하구이고 북으로는 바다를 건너 고구려에 이른다 여기서 바다는 현 발해만을 말합니다. 이말은 백제가 중국대륙에 진출했다는 것을 증명하지요
북으로 바다를 건넌다 이것은 백제가 중국 산동성에 영토를 가지고 있으면 가능한 얘기입니다(한반도 백제는 불가능)
문헌비고
"월왕 구천(전국시대 월나라의 왕, 월나라는 양쯔강 이남을 지배했던 대국)의 고도(옛 수도)를 둘러싼 수천리가 다 백제의 땅이었다"
만주원류고
"금주,의주,애주,애훈(중국 북경인근 지방) 등지가 다 백제이다"
3.바다를 지배한 백제의 힘
백제의 요서진출 아니 중국진출은 8대 고이왕이 낙랑의 서현(금주지방)을 함락하면서 개시되었다가 10대 분서왕 때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분서왕이 지금의 중국 천진지방을 점령하자 서진은 국력이 급속히 약해져서 결국 유연이 세운 한에 멸망하게 됩니다. 한편 서진 멸망 후 서진의 왕족이 양쯔강 이남에 동진을 건국합니다. 중국 역사책을 보면 동진이 호(胡)에게 끊임없는 시달림을 겪다가 양자강 하구의 기름진 옥토를 빼앗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학자는 이 호를 흉노라 기록했지만 사실 이 호는 동호 아니 동이족 정확히 말하면 백제였습니다.
중국 역사책 사기를 보면 이 호와 흉노를 구분하였습니다. 사기를 보면 호를 고조선이라고 기록한 예가 많은데 이 기록을 참고하면 호가 백제임을 알 수 있지요
아무튼 백제는 13대 근초고왕이 즉위하면서 영토를 급속도록 확장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제(소열제)를 전사시키고 왜를 신민으로 삼았으며 중국의 동진을 복속시켰습니다. 그러다가 고구려 19대 황제 광개토태황제에게 굴욕을 겪다가 24대 동성왕이 즉위하면서 백제의 힘은 급속도록 강력해집니다.
백제 동성왕 때 당시 북중국의 강자 북위(고구려의 속국)가 10만 기병을 이끌고(10만 기병은 40만 보병과 맞먹는 힘) 백제를 쳤으나 백제는 평야지방에서 북위의 10만 대군을 몰살시켰다고 합니다.
남제서를 보면 백제의 장군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 이 네 명의 장군이 북위의 침략을 격퇴시켰으므로 백제의 요청에 따라 이들을 왕으로 임명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백제사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고 문정창 선생에 의하면 백제는 바다를 지배하고 대륙을 지배한 거대강국이었습니다. 그 분에 의하면 백제는 중국의 남조국가를 식민지로 두었다고 합니다.
백제가 남조 중 하나인 양나라 즉, 양나라를 세운 도이 숙연이 나라를 세울 때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양나라의 문화인 벽돌문화가 양이 아닌 백제의 문화라고 합니다. *
4.백제의 최대영토
중국 하북성,산동성,강소성,안휘성,호남성,호북성,절강성,사천성,인도차이나(동남아 일대) 일대를 지배했습니다.
즉 중국의 동부와 남부의 일부, 서남부 일부지방과 동남아 지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대륙백제의 근거>>
동방의 로마제국이라 불리는 동아시아 강대한 해상제국 백제는 분명히 중국대륙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망국통일 후 신라와 당은 백제의 역사를 축소, 깎아내렸지만 백제가 대륙에 진출했다는 증거는 여럿 있습니다.
1. 삼국사기 열전 최치원전 과 중국 사서
신라 말 대학자였던 최치원 선생은 난랑비 서문에
"고구려와 백제가 강성할 때에는 강병 100만이 넘었으며 북으로는 유, 연, 제, 노 등지를 소란하게 하였고 남으로는 오, 월을 침략하였다."
위의 유, 연, 제, 노, 오, 월은 중국의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절강성에 이르는 바꾸어 말하면중국 동해안 지역입니다. 고구려와 백제가 이들 지역을 공격한것은 고구려와 백제가 중국에 진출했다는 증거이지요
"백제는 후에 점점 강하고 커져서 여러 나라를 병합하였다.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 때에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점령하였고, 백제도 역시 요서와 진평 2군을 점거 소유하였다." <<송서, 양서>> <백제전>
"원래 백가제해라는 데서 백제라 부르게 되었다. 진나라 때 고구려가 요동을 취하자 백제도 요서와 진평두 군을 영유하여 근거지로 삼았다." <<통전>> <백제전>
"(백제의 영토는) 서로는 월주(양쯔강 연안)에 이르고 북으로는 바다(발해)를 건너 고구려에 이르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에 이른다 <<구당서>> <백제전>
"부여가 처음에 녹산에 웅거하고 있다가 백제에게 격파당해 서쪽 연 가까이 옮겼다." <<자치통감>>
"월(춘추전국시대 양쯔강에 있던 국가)왕 구천의 고도를 둘러싼 수 천리가 다 백제의 땅이었다." <<문헌비고>>
"금주, 의주, 애훈(중국 동해안 지역) 등지가 다 백제이다." <<만주원류고>>
2. 북위와 백제의 전쟁
서기 499년 북중국의 강자 북위가 10만의 기병을 이끌고 백제에 쳐들어 왔으나 당시 백제의 왕 동성왕은북위의 기병을 평원에서 패퇴시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해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북위가 과연 한반도의 백제를 쳤는가? 대답은 No입니다.
북위와 싸운 백제는 한반도 백제가 아닌 대륙백제입니다.
만약 북위가 한반도에 있던 백제와 전쟁할려면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배를 이용한 해상전 인데 이는 가능성이 희박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북위를 세운 탁발선비족은 전형작인 유목민족이라 바다를 이용한 해상싸움은 불가능합니다.
유목민이 세운 왕조를 보면 해상싸움보다는 기병전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지요
그리고 위서, 남제서를 보면 북위가 "10만 기병"을 일으켯다고 분명히 쓰여 있습니다.
즉 백제와 북위의 싸움은 육지전이었으며 이 싸움은 대륙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둘째, 고구려의 길을 빌려야 한다
이것 역시 가능성이 거의 제로입니다. 당시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패자였습니다.
북위 또한 이런 고구려에 꼼짝을 못했죠 일례로 고구려는 북위에 북위 왕실의 역사서를 바치라고 했는데
이는 천자가 제후에게 할 수 있는 행위였는데 북위는 고구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고구려에 북위 왕실의 역사서를 바쳤습니다.
고구려 보다 약한 북위가 어떻게 고구려를 거쳐 한반도에 있는 백제를 칠 수 있겠습니까?
셋째, 당시 국제정세를 볼 때 북위는 바다 건너에 있는 적을 공격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당시 북위는 동으로는 고구려, 서로는 토욕, 남으로는 남조, 북으로는 유연에 둘러쌓인 즉, 사방이 온통 적으로(동쪽의 고구려는 제외) 둘러쌓인 나라입니다. 만약 북위가 바다 건너 원정을 한다면 수도인 낙양이 비겠지요 그렇다면 그 틈에 적국이 북위를 공격할 틈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 북위로써는 위협도 되지 않는 바다 건너의 세력을 공격하면서 까지 위험을 감수하는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북위와 백제의 전쟁은 무엇을 말할까요?
이는 대륙 정확히 말하면 화북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아니 오히려 동쪽의 또 다른 위협세력인 백제를 제거하기 위해 대륙의 백제를 공격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백제는 대륙에 있었고 북위와 싸운 백제는 한반도 백제가 아닌 대륙백제인 것을 알 수 있지요
*문정창 선생의 글*
『백제 동성왕이 그 21년(499) 과거 십여 년간 10만~20만의 규모의 병력으로써 대결해 오던 북위의 문제를 결정타하여 회수 유역과 산동반도를 점령한 후부터는, 남지나(남중국)는 완전히 백제인의 천지가 되었다.
그 전투에서 백제 세력을 등에 업게 된 도이(島夷: 동이의 일족) 숙연이 남제 화제로부터 찬위하여 양을 건립하였음은 위에서 밝혔다.
양대는 백제국이 남지나에 진출한 지 200여 년이요, 또한 남지나가 완전히 백제인의 천지로 된지 60년이다. 그간 백제문화와 백제인의 생활 양식이 남지나에 작용하고 침투하여, 남지나의 생산품, 음식, 일상생활, 혼례, 그리고 심지어는 언어까지 이토록 백제화 하기에 이른 것이다. 』
*백제의 번영*---『가림토』에서 발췌
"A.D121년 기루왕(백제 3대 왕)은 백제의 발상지인 금주(현 요서지방) 즉 대방지역을 공격하였으나 부여군의 한(漢) 측 가담으로 실패하였다.(예족과 맥족의 대립: 예, 맥족은 우리민족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고이왕 때 서기 246년 유주자사 관구검이 고구려를 맹공격하여 환도성을 함몰하고 고구려 동천왕(고구려 11대 임금)을 추격하여 집안으로 들어가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낙랑지역(지금의 금주지방)을 기습하여 점령하엿다.(고이왕의 대륙상륙작전)
고이왕이 발해만의 낙랑지역을 점령한 지 20여년 만에 조위(삼국지연의의 위(조조)나라)가 망하고 사마염의 진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곧 사방에서 군웅이 할거하여 대륙이 혼란에 빠졌다. 이 틈을 타 백제의 분서왕(10대 왕)이 천진지방을 점령해버리자(304) 서진은 국력이 급속히 약해지면서 사직 51년만에 망하고 말았다.( 비류왕, 317)
다시 말해서 백제 분서왕 때 유연이 한을 건국하면서 중국대륙은 5호 16국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대개 5호(胡)를 흉노, 갈, 선비, 저, 강이라고 하는데 흉노는 호가 아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호와 흉노를 분명히 구분하였다. 양자강 이남으로 밀려난 동진은 그 후에도 계속 호족에게 쫓겨 양자강 하구의 기름진 옥토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는데 송서에서 말하는 호란 바로 백제국인 것이다.>
한편 서진이 망하자 사마예가 양자강 남쪽에서 동진을 세워 102년간 사직을 보존하였다. 이 때 백제는 남만주 금주지방과 천진지방을 근거로 남북으로 뻗어나가며 하북성 지방을 온통 점령해 버리는 것이다.
또한 백제는 약해질대로 약해진 동진을 밀어 내면서 곡창지대인 양자강 좌우양안을 점령하여 250년간이나 통치하게 된다. 당 태종의 명으로 영고덕, 방헌령이 지은 <<주서>>백제전과 역시 당나라 때 이연수가 편찬한 북사의 백제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자진(自晋) 송·제·양거강좌(梁據江左)·후위택중원(後魏宅中原) <<주서>> <백제전>
"자진(自晉) 송(宋)·제(齊)·양거강좌우(梁據江左右) <<북사>> <백제전>
또 문정창 선생은 신라 경문왕 때 '최치원이 당나라도 들어가 과거를 급제하여 당성군 태수로 재직시 당묘에 제출한 상소문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구려와 백제가 전성할 때 강병이 100만이 넘었으며 북으로는 유, 연, 제, 노를 소란케 하였고 남으로는 오, 월을 침략하였다."
백제가 망한지 200년 뒤에 최치원이 이런 글을 썼다면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백제는 강병 200만으로 중국 대륙의 하북, 산동, 회수유역, 양자강 유역의 오, 월 지대를 점령하였고 일본열도와 대마도, 일기도, 북구주등을 쳐서 굴복시켰던 것이다.
특히 백제의 동성왕(백제 24대 임금)은 20만 대군으로 북위의 문제를 강타하여 회수유역과 산동반도를 점령하면서 남중국 일대를 완전히 장악해버린 것이다.
「백제는 멸망하기 직전까지 대륙에서 일본열도에 이르는 방대한 동아시아의 로마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백제가 망한 후에도 3년 이상 계속되는 그들의 항쟁사를 보면 그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며 아직까지도 이러한 대백제의 전통과 문화(유물 및 유적)가 중국 대륙 곳곳에 남아 있으며 일본 열도에는 그러한 잔영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밝히고 널리 알리지 못할 따름이다.) 우리 땅에 남아있는 백제의 흔적이 적다하여 800년 백제의 위대한 역사를 덮어 두려고 한다면 배달민족의 뿌리를 이어온 대백제의 조상들에게 우리가 무슨 면목으로 고개를 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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