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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묘호 / 종과조

고양도깨비 2007. 3. 18. 23:38

왕들의 묘호(廟號) 조와 종
 
 
ㅇ 조선조 임금을 부를 때 세종,태종,성종의 [*종]과 태조,영조,정조의 [*조] 연산군의 [*군]은 어떤 때에 그 끝이름이 붙는지 알고 싶습니다.그 임금의 행적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어떤 관점에서 사관이나 후손들은 임금의 사후에
종,조,군을 붙였는지요. 어떤 규칙이 있는지...

 

-태조.태종.세종.세조.성종.선조와 같은 호칭은 사실 왕들의 이름이 아니다. 이는 임금들이
죽은 후에 신주를 모시는 종묘의 사당에 붙인 칭호로서 廟號라고 한다. 왕조시대에는 신민들이 감히 왕의 이름을 부르지도 쓰지도 못한다. 그래서 왕들은 생시에는 主上이나 殿下로
불리우고, 죽은 후에는 존칭으로서 묘호나 陵號로 불리운다. 세종은 英陵 혹은 英廟라고도
불리웠다.
묘호는 그 왕이 죽은 후 신주를 종묘에 부묘할 때 그 廟室을 지칭하기 위해 조정에서 의논해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폐위되어 종묘에 들어가지 못한 왕들은 묘호가 없다. 이들의 '군'자는 왕자군에게 붙이는 봉호이다.
왕의 호칭에는 廟號 외에도 死後에 중국 황제가 지어 보내주는 諡號와 신하들이 그 왕의 덕을 칭송하기 위해 지어 올리는 徽號(혹은 尊號) 등이 있다. 예를 들면 太祖의 정식 호칭은 '
太祖 康獻 至仁啓運聖文神武 大王'으로 太祖는 廟號, 康獻은 諡號, 至仁 이하는 휘호(존호)
이다.廟號는 원칙적으로 창업 개국한 왕과 그의 四代祖까지만 '할아비 祖'字를 붙이고 그 뒤를
이은 왕들에게는 宗統의 계승자라 하여 宗字를 붙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다. 宗字에는 또한 사당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 왕의 경우
에도 祖字를 붙이는 例가 있다.


묘호를 정할 때는 흔히 "祖功宗德"이니 "有功曰祖, 有德曰宗"이라 하여, 공이 많으면 祖, 덕이 많으면 宗字를 붙인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애매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이 많은지 덕이 많은지 판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관적인 것이므로 묘호를 정할 때의 의논에 좌우되기 마련이었다.
이로 인하여 때로는 조정에서 공론이 분열되어 소동이 일어나는 일도 있었다. 대개 宗字보다 祖字가 더 명예로운 것으로 생각하였으므로 신하들이 아첨하느라고 억지로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世祖 宣祖 그리고 純祖의 경우 후대에 그러한 비난을 받았다.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는 창업자인 太祖나 高祖 및 그들의 4조 외에 후대의 황제들에게는 祖字를 붙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묘호는 때로 후에 改定하는 일도 있었다. 仁祖의 묘호는 본래 烈宗이라고 정하였는데 孝宗의 명령으로 고친 것이고, 英祖와 正祖의 묘호는 원래 英宗과 正宗이었으나 1897년 조선이
국호를 大韓帝國으로 고친 후 宗을 祖로 고쳤다. 定宗과 端宗은 오래동안 묘호 없이 恭靖王과 魯山君으로 불리웠으나, 숙종 때 와서 비로소 정하여 올린 묘호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반정으로 축출되고 죽은 후 宗廟에 들어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묘호가 없었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이라는 칭호는 그들이 왕자시절에 받은 封君 爵號이다. 이는
그들이 다시 왕자의 신분으로 강등되었음을 뜻한다.


반대로 즉위하여 군림하지는 못하였으나 후에 왕으로 추존된 이들에게도 묘호를 올렸다. 成宗의 생부인 德宗, 仁祖의 생부인 元宗, 正祖의 생부인 莊祖, 憲宗의 생부인 翼宗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왕자의 신분이었으나 사후에 아들들이 왕이 되어 국왕의 지위로 예우 격상된 것이다. 그러나 선조의 생부인 德興大院君이나 高宗의 생부인 興宣大院君은 왕자가 아니었고, 또 昭穆의 차례에도 맞지 않아 왕으로 추존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