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기힘든 사진들

아름다운 추억의사진들

고양도깨비 2007. 3. 18. 23:00





여치집 파는 행상 / 1963. 06. 01













한강 뚝섬 피서 인파 / 1966. 07. 01













입안이 얼얼한 팥빙수 / 1966













시골의 여름 / 1966. 08. 18













한강물과 함께 출렁이는 광나루의 인파. / 1967. 07. 29













폭염으로 얼음이 귀했던 1967년 여름













해운대 피서 인파 / 1970. 08. 10













인천 송도해수욕장 / 1971. 08. 08













난간에 매달려 가는 승객들로 인해 위험스런 만원인 교외선. / 1972. 06. 11













피서인파 150만 - 구식증기기관차까지 동원된 임시열차도 초만원. 위험을 무릅쓰고
열차위까지 몰려 타고 있는 피서인파. / 1972. 07. 23













한강 뚝섬 물놀이 인파 / 1964. 08. 01













만원 교외선의 행락객들 / 1972. 08. 01













여름 어린이 물놀이 / 1973. 07. 01













무더위로 급수차 호수로 땀을 씻고 있는 어린이. / 1973. 07. 20













대천해수욕장 피서인파 / 1973. 07. 25













어린이들의 물장난(전남 장성군 황룡강) / 1974. 08. 08













얼음 배달꾼 / 1974. 08. 01













한강 광나루유원지 피서인파 / 1974. 08. 12













완행열차, 흥겨운 행락객들 / 1975. 06. 01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아가씨들.(대천해수욕장) / 1975. 08. 08













한강 뚝섬 물놀이 인파 / 1964. 08. 01













해운대해수욕장 행상 - "달고나 사이소" / 1977. 08. 01













船遊도 불볕피해 - 서울뚝섬유원지의 선유객들. 강위에 배를 띄우고도 불볕을 피해
성수대교 아래 그늘에 머물고 있다. / 1978. 07. 29













원두막의 어린이 / 1980. 07. 24













탈도시 꿈꾸는 대합실 인파 풍경 / 1981. 07. 29













여름을 이기는 골목 아이들 / 1982. 08. 01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 행락 인파 / 1982. 08. 01
 

 

 

 

                                          

 

                                                          남대문이라나요... 전차도 있고

 

 

                                           

 

 

                                    청계천이라나요..요사이 청계천 복개공사를 한 것을

                                       다 뜯고 맑은 물이 흐른다는데....복고로...

 

 

 

                                          

 

                                                     시청앞... 지금은 시청앞은 새 단장을...

 

 

 

 

                                            

 

 

                                                 시발택시..서울역.. 지개꾼들도...

 

 

                                          

 

                                          서울역광장..전차..벗,..시방택시..삼륜차...


 

                                             
                                                                제2공화국 출범 경축식(1960-10-01)

                                           
                                                              경복궁서 군인위문공연(1961- 5-29)

                                           
                                                                     수영복입은 박정희(61-09-11)

                                            
                                                          대학생 농촌문맹퇴치계몽 활동(1962-01-11 )

                                                                                                
                                                   KBS의 전신인 서울방송국 위문단 제주도 위문공연(1962-03-

 
 
 
1960년대 시절의 아이들(까까머리와 익살스런 웃음이 돋보입니다)

 
 
어깨동무(우리는 친구)

 
 
그때만해도 고무신을 신고 다녔고 책보 책가방들고 다녓습니다

 
 
1960년대 아이들2

 
 
단발머리 소녀

 
 
동네 어르신들의 행차

 
 
동네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아낙

 
 
1968년도 리어커 수리점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었던 그시절 자전거에 짐을 가득싣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에야 공업사가 시내에 버졋이 있지만 그전에 외각에 치우쳐 있어서 아이들이 오줌을 싸기도 했다

 
 
서울시내거리"군사정권 시절 시내에 군용찝차들이많이 다녔다

 
 
1960년대 전형적인 서울의 주택가 모습

 
 
시민들의 교통수단 자전거

 
 
옆집친구네집 마실까기

 
 
동네시장풍경(그때삼양라면이 20원 했던가요?)

 
 
동네담배가게(그전 담배는 아리랑 봉초가 유명했었죠)

 
 
리어커를 끄는 아저씨(그때는 밀짚모자가유행)

 
 
공터에 애기업고 나온 동네아줌니들

 
 
1960년대 영화선전 벽보

 

 

논가 근처에서 노는 쪼무래기 아이들"

 

 

전쟁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한다.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다.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산다. 그리고 잡초보다 모질 게 살아남아야 했다.

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진 나무뿌리는 이 가족의 한 끼 식사일까,
아니면 땔감일까.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 시민혁명과 쿠데타,
군사독재와 경제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처럼 관통하여 "의지의
한국인"을 세계에 알리는 주역이 되었다.

 

 

 

부모님은 피난통에 돌아가시고,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 폐허가 된 터에
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난의 1950 년대를 몸으로
때우며 살아온 이 민족의 처절한 단면이다.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강하게 의식하는 이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개털모자에 항공모함같은 헝겊 군화, 곳곳을 기운 이 복장이
195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던 대부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좋다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조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도 넉넉지 못했던 시대에 두 소년이
끌고 가는 수레에는
한 식구의 온기를 담보하는 행복이 실려있는 듯하다.

 

 

 

태평양을 건너온 미군복을 얻어 입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마음씨 좋은 미군 아저씨를 만나면 미국으로 입양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연을 들고 포즈를 취한 소년들.


전쟁의 傷痕(상흔)을 잠시 잊은 듯하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한 아이가
탈진 했는지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마치 요즘 북한 장마당의
꽃제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잔뜩 겁을 먹었는지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노인이 문 긴 담배대를 고개를 외로 꺽고 바라보는 소년과,
소년이 손에 쥔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전쟁은 노인의 빈 담배대와 소년의 빈 깡통 속에 있었다

 

 

 

봇짐을 등에 진 할아버지와 망태기를 손에 든 손녀.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이렇게 지게에 가재도구를
싣고 수백 리 길을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다.

 

 

 

길가에 앉아 참외 등을 팔고 있는 아낙들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가 고작이었던 시절 한 지게꾼이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길가에서 잠들어 있다.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어린이. 담요 한 장으로
매서운 추위를 견더낼 수 있을까

 

 

 

포로수용소 내에서 친공 포로들이 제작해 걸어 놓은 선동 포스터.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똥통을 운반하고 있는 공산군 포로들.

 

 

 

인민군 포로들의 숙소. 난민 캠프를 연상케 한다.

 

 

 

수용소에서 공산군 포로들이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다.

피가 튀고 뼈가 조각 나는 포연 자욱한 전장은 이들에겐 일장춘몽이었을까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흡사 무슨 공장을 연상케 한다.

수만 명의 포로를 먹이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무장 경비병에 둘러싸인 채 뭔가 지시사항을 듣고 있는 인민군 포로들.

 

 

 

여유를 되찿은 인민군 여자 포로가 미소를 짖고 있다

 

 

 

아직도 살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민군 포로.

탁발승처럼 모포를 가슴에 두른 것이 인상적이다.

 

 

 

수용소 연병장에 모여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포로들.

 

 

 

거제도포로수용소 경비병이 인민군 포로들로부터 입수한

철조망을 뜯어 만든 사제 무기와 도끼,칼 등을 들고 있다.

 

 

 

가슴에 태극기와 양 팔뚝에 멸공,애국 이라는 글씨를 새긴 반공 포로.

밤마다 親共(친공)포로와 反共(반공)포로들의 살육전에 많은 포로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태극기를 들고 공산당 격퇴를 환영하는 마을 주민들

 

 

 

삶과 죽음이 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살아나고

운이 다한 사람들은 한 점 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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