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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땅의 기득권은 누구에게 더 있는가?

고양도깨비 2007. 1. 31. 21:20

만주땅의 기득권은 누구에게 더 있는가?

 

만주땅은 우리 것. 태평양도 양보 못한다.

내가 대학때 즐겨부르던 노래의 한 토막이다.
만주땅은 우리 것.

그런데 우리는 종종 만주를 생각속에서도 잊고 산다.
현실적으로 중국이라는 나라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만주가 언제부터 중국땅이었는가.
나는 몇년 전 만주에 대해서 놀라운 사실 2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종종 이야기를 한다.

첫째. 1945년 영국은 만주국을 무너뜨린 후, 그곳에 유태인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 이것은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구체적인 근거는 확인을 못했다.

둘째. 1945년 8월 9일 소련은 대일본 선전포고를 한 후, 신속하게 군대를 만주에 진주시켜 주요지역을 점령, 장악한 후 8월 14일 장개석 정부와 소련이 가졌던 만주에 관한 모든 권리를 1905년 이전의 상황으로 돌린다는 협정을 체결했다.
소련은 국민당 정부의 만주진입을 막고, 모택동의 공산군에게 만주를 기지로 제공함으로써 공산당이 중국내전에서 승리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중공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댓가로 만주에 대한 권리를 소련으로 부터 완전히 인정받았다. - 김하룡, 한국전쟁이 중공정치에 미친 영향, 아세아연구에 실린 논문.

만주땅 1945년 광복군은 미군과 연합훈련을 하면서 한반도에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구가 통탄했듯이 일본이 조금만 더 늦게 항복했다면 광복군이 한반도에 투입되어 우리 스스로 해방을 했다면, 우리는 해방된 군대로 여세를 몰아 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공격하여 최소한 간도지방을 되찾을 수 있었을 수도 있었다.

1945년까지 만주땅은 중국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미 만주족이 거의 사라진 상태에서 청을 계승했다는 이유로 민족이 다른 중국이 만주에 대해서 모든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여러 연합국들이 거대중국의 탄생을 우려하여, 만주를 우리에게 주거나, 소련과 몽고에게 일부를 떼어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소련이 같은 공산주의 국가의 탄생을 위해 만주를 모택동정권에게 거의 무상으로 주는 바람에 오늘날과 같이 만주가 중국의 땅으로 정착된 것이다.

과거 만주에 한족 정권이 차지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가장 확실한 시기는 명나라때이지만, 그것은 오늘날 요녕성 일대에 국한될 뿐, 길림과 흑룡강성 일대에는 지배력이 미친 바가 없다.

좀 더 인정해서, 668년에서 669년까지 당나라 요녕성 일대를 조금 지배한 것, 그리고 2-3세기 공손씨가 요하일대를 지배한 것, 기원전 108년부터 약간 한나라가 지배한 것.

이런 모든 것을 합쳐보아도 만주지역을 한족이 다스린 것은 최대 500년, 지역상으로는 요녕성 일대를 넘지 못한다.

그런데, 왜 만주땅을 중국땅이라고 하는가.

역사는 가변적이다. 지금 우리가 무력으로 만주를 되찾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가 변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유태인이 이스라엘을 다시 건국한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교훈이 되고 있다.

만주를 잊지 말자. 언젠가는 어떤 역사적 계기로 인해 우리가 만주를 되찾게 될 수도 있다. 그 준비를 해야 한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우리의 인식에서나마 만주는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땅이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땅이며, 언젠가는 우리의 실효적 지배하에 들어와 우리의 역사적 활동무대가 되어야 할 땅임을 잊지는 말자는 것이다.

나의 이런 사고는 침략주의적 사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역사는 준비하는 자를 위한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대하는 입장이나, 우리가 만주를 대하는 입장이나 다른 것이 없다. 중국이 남사군도를 대하는 입장을 생각해보자.
우리만 성인군자라고 다 주고 나는 빼앗지는 않겠다고 생각해서는 냉혹한 현실에서 생존할 수 없다.
역사는 변한다. 자연스럽게 기회가 올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말할 뿐이다. (김용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