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게시판

백화점의 숨은상술 보이나요.

고양도깨비 2007. 1. 12. 19:54
 

 

백화점 숨은 상술, 보이나요?


어느새 번잡스러운 백화점에 익숙해져서 매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제품들을 척척 찾아내는 데 선수가 된 우리가 마치 복잡한 미로에서 출구를 찾아내는 훈련에 단련된 실험실 쥐 같아 마음이 씁쓸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복잡하게만 보이는 백화점에 도대체 어떤 상술이 곳곳에 숨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도록 하자. 속아 넘어가더라도 알고나 속아 넘어가자는 것이다.   

우선 백화점에는 유난히 유리나 거울이 많다. 기둥이나 벽도 거울처럼 사람의 모습이 비치는 반들반들한 대리석으로 돼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거울 앞을 지날 때면 무의식적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걷는 속도가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거울 앞에 선 사람은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주위 진열대에 무의식적으로 좀더 관심을 보이게 되며 거울에 비친 반대편 물건에 시선이 끌릴 수도 있다. 백화점의 거울은 고객의 시선을 한 번이라도 더 제품에 쏠리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반면 백화점에는 벽시계와 창문이 없다. 어느 건물을 가든 넘치는 게 시계고, 창문 없는 건물이 없건만 백화점만은 예외다. 이것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쇼핑을 하라는 백화점 측의 따뜻한 배려(?)다. 쇼핑에 열중하던 아줌마들이 행여 저녁시간이 다된 것을 눈치채고 가족들의 식사를 위해 가정으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설치하지 않는 것이다. 닭들이 배가 터지도록 모이를 쪼게 만드는 양계장의 형광등 불빛처럼 창문 없는 백화점의 샹들리에는 영업시간 내내 낮처럼 밝기만 하다.

 매장에서 주력 상품들은 어디에 전시되어 있을까? 백화점 내에서 선호도가 높은 위치는 어디일까? 그것은 매장을 돌아다니는 고객의 쇼핑 습관과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상황이 허락하는 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방식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좌측통행을 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왼쪽에 붙어서 걷는 특성이 있으며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는 왼쪽 방향으로 도는 경향이 있다(물론 우측통행을 하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국민들은 반대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오면 왼쪽 옆에 값싼 세일 상품을 카트에 늘어놓고 파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오른손잡이들은 백화점 매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구경할 때 주로 오른쪽을 먼저 쳐다보는 경향이 있으며, 물건을 집을 때도 오른손으로 집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왼손잡이가 아니라면 왼손을 사용해 몸을 가로질러 상품을 집는 것보다 오른손으로 오른쪽에 있는 상품을 집는 것이 훨씬 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미국의 백화점들은 이러한 사항을 고려하여, 손님의 손에 닿게 하고 싶은 물건들은 늘 오른쪽으로 약간 비껴서 진열해 놓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매장 입구의 오른쪽에는 가장 중요한 상품들, 즉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손님들에게 보여야 할 매장의 주력 상품들을 주로 배치해 놓는다.

백화점에서 여성의류는 2-3층, 남성의류는 대개 3-4층에 자리잡고 있다. 여성의류를 파는 곳이 남성의류를 파는 곳보다 낮은 층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거운 짐을 든 여성들이 힘들어할까 봐 배려하는 것일까? 물론 그런 면도 없진 않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딴 데 있다.

남성들은 주로 사야 할 물건이 있을 때 백화점을 찾는 경우가 많으며, 윈도쇼핑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한 후에는 곧바로 백화점 출구를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무리 높은 층에 코너를 마련해 놓아도 위치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고 물건을 산다. 그러나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훨씬 더 쇼핑 자체를 즐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여성용품을 2-3층에 배치해 두면 화장품이나 가방을 사러 잠시 들른 여성 고객을 위층으로 유혹할 수 있다. 

매장 내 물건을 배치하고 진열하는 데에도 숨겨진 법칙이 있다. 상품이 놓인 진열대의 높이에 따라 같은 종류의 제품이라도 판매율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손을 뻗으면 집을 수 있는 높이에 제품을 놓으면 고객의 눈보다 높은 위치에 놓여 있거나 무릎이나 허리를 구부려야 집어들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보다 손님이 집어들 확률이 네 배 이상 높으며 팔릴 확률은 두 배 이상 높다고 한다. 그래서 백화점에서는 제품을 선반에 아무렇게나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이 높은 상품을 손이 쉽게 가는 적정 높이에 배치해 놓는다.           

2-3층에 있는 여성의류 매장에는 간이의자가 하나둘씩 배치돼 있거나 걸터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남성이 그다지 쇼핑을 즐기지 않는 특성과 관련 있다. 남편이나 남자 친구와 함께 쇼핑을 해본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으리라. 매장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물건을 꼼꼼히 따져볼라치면 함께 온 남편이 옆에서 하는 말. “대강 고르고 빨리 가자!”

한 통계에 따르면, 여자 고객이 혼자 매장에 들어서는 경우 고객의 평균 쇼핑시간은 5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여자 친구를 동반하는 경우 이 시간은 8분 15초로 늘어나지만 남자를 동반하는 경우 4분 40초로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백화점은 여성들이 옷을 고르고 입어보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는 동안 남성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줌으로써 여성의 쇼핑시간이 단축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지하 식품 코너에는 어떤 상술이 숨어 있을까? 지하 식품 코너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물건들은 주로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카트를 끌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벽면에는 과일과 야채가 놓여 있고 안쪽 벽면에서는 고기와 생선을 팔며 왼쪽에서는 음료수를 판다. 과자나 그밖에 필요한 생필품들은 가운데 위치해 있다. 지하 식품 매장에서 장을 보는 주부들을 관찰해 보라. 그들은 마차를 타고 필사의 경주를 하는   <벤허>의 검투사들처럼 카터를 밀며 가장자리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장을 본다. 그리고 그 안쪽 트랙(?)에는 그들의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게 하려는 매장 직원 아줌마들이 시식 코너를 앞세워 그들을 유혹한다. 손님들이 가장자리만 돌다 계산대로 직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식 코너는 안쪽으로 갈수록 많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지하 식품 코너의 핵심은 ‘계산대’다. 식품 코너의 계산대는 미국에서도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미국은 백화점 지하에 식품 코너가 따로 없고 주로 K마트나 월마트, 브래들리 등 대형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판다. 이들 대형 슈퍼마켓은 우리나라의 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처럼 계산대 앞에서 기다리는 주부들에게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서 초콜릿이나 껌, 잡지, 건전지 같은 물건을 진열해 놓고 있다. 기다리기 지루한 손님들이 별 수 있으랴. 집어들 수밖에.

게다가 미국에서는―고객들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계산대 쪽 바닥이 다른 부분에 비해 약간 높게 설계돼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건을 잔뜩 실은 카트를 밀고 경사진 비탈길을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주부가 필요한 물건들을 카트에 넉넉히 담아 계산을 하려고 계산대 쪽으로 가다보면 조금씩 힘이 들게 된다. 따라서 걷는 속도도 조금씩 느려지고, 그러다 보면 눈에 띄는 물건이 있을 때 카트를 멈추고 그 물건을 집어들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무심코 지나쳤던 물건을 다시 살펴보기 위해 카트의 방향을 반대 방향으로 돌릴라치면 이제는 경사가 낮아지기 때문에 쇼핑 카트는 저절로 계산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결국 손님은 무의식중에 카트를 따라 다시 매장 깊숙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계산대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면 다시 경사는 내리막이 된다. 계산이 끝난 손님은 빨리 계산대 근처에서 벗어나게 하여 다음 손님이 곧바로 계산할 수 있도록 내리막 경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렇듯 매장의 상품 진열에서부터 계산대의 바닥 높이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의 구석구석은 고객의 쇼핑 패턴을 분석해 손님들이 매장에서 더 많은 물건을 더욱 쉽게 구경하고 결국에는 그것들을 구매하게끔 설계돼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