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국보1호

고양도깨비 2006. 12. 12. 20:50


일본 교토에 가면 한국의 경주와 같은 느낌이 든다. 옛 에도시도의 흔적들이 도시의 구석구석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한국과 관련된 내용들도 많다(물론 일본에서는 눈꼽만큼도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대표적인 것이 교토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코류지(603년에 건립된 일본 최고의 사원(절))에 모셔진 미륵보살이다. 이것은 신라인에 의해서 만들어져서 옮겨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그 이유로는,

1. 아직도 그 절의 주변에 살고 있는 진(秦)씨 후손들의 많이 살고 있는데 그 성씨는 신라인의 성씨라는
점이다.

2. 일본에서는 불상이나 미륵을 만들때 스기나무(흔히 말하는 일본 소나무)를 이용하고, 여러 부분을 따로 따로 조각해서 붙이는 방법을 활용한다. 그런데, 이 미륵불은 붉은 소나무(한국에만 있는 소나무)로 만들어졌고, 몸 전체가 하나의 통나무를 조각하여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의 어떤 불상이나 미륵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재료와 기법이다.

3. 일본의 미륵불에서는 볼 수 없는 미소와 분위기가 풍겨진다는 점이다. 즉 일본인들에게는 이국적인 분위기로,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분위기로 다가온다. 그 예로써, 미륵불의 오른손 둘째 손가락이 떨어져나가서 현재 봉합을 한 상태라고 한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관광 왔던 어떤 유학생이 너무나 다정하고 정감이 가는 모습에 참지 못하고 그만 와락 끌어안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물론 지금은 사진 촬영조차 금지되어 있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정말 얼마나 아름다운지 누구라도 끌어안고 싶어질 정도의 신비한 미소와 자태를 머금고 있다. 일본의 어떤 불상이나 미륵에서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모습인 것이다.
4. 당시 시대적 배경을 보아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이다. 백제, 가야, 신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와 많은 유용한 문화를 활발히 전수해 주던 때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3대 신비 중의 하나라는 호류사 금당벽화도 고구려인 담징의 작품이 아너던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일본의 국보 1호 미륵보살이 신라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옮겨졌다는 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미륵불 주변에는 많은 지옥사자 조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왠지 그 또한 한국인들의 작품이거나 강점기 시절에 강탈해 왔거나, 아니면 또 다른 경로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온 작품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국보 1호가 이럴진데, 다른 문화재들은 말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많은 매장 문화들의 발굴도 일본에서는 선뜻 시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쏟아져 나오는 문화재들이 신라, 고구려, 백제의 것이라는 걱정이 스스로가 들어서가 아닐까

 

교토 주변에는 귀무덤(코무덤), 적산궁(장보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함) 등 한국과 관련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특히 장보고는 옛 일본 상인들이 추앙하던 재물신으로, 아직도 신사에 모셔놓고 많은 일본인들이 찾아서 재물운을 소원한다고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 일본이 무엇이 가깝나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문화(재)적으로 너무나 가까운 것이 아닐까(적어도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그리고 먼 것은 현재에 와서 쌓아가고 있는 배타적인 감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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