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불교 이야기

석가세존 이전의 불법(佛法)

고양도깨비 2007. 12. 5. 21:11

 

                 ★석가세존 이전의 불법(佛法)★

잊혀져 있는 것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되고,또 분별의식을 내버려야 한다는 것은,

정토진종의 증아양심(曾我量深)도 말하고 있다.

증아(曾我)선생은 석존 이후에 불법이 있다고 하지만,

석존이 태어나기 이전에 불법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고 말한다.

 

「석존이 안 계셨으면,석존 이전의 불교란 없습니다.

석존이 계셔서 불도(佛道)를 행하고 성도(成道)를 이루어,

석존은 자신의 깨달음을 설하셨습니다.

그 석존의 설법이라는 것을 듣고  있자면 석존 이전의 불법이란

어떠한 것일까 하고 반드시 생각하게 됩니다. 

생각해야 할것을 생각하는 것인데,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을 처음 듣습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처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옛 사람도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무량수경』의 신자도,『법화경』의 신자도,

석존 이후의 불법이라고 생각하여 다투고 있지만,

양 쪽이 함께 석존 이전의 불법이 

무엇인가 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되면 다툼은 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손을 잡고 "야,오랫만이군"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법화경』에는 <땅에서 솟아나온 보살>이라는 것이 쓰여져 있습니다.

그것은 원시인일 것입니다.문화인이 거들먹거리는데,

야만인이 나오는 것입니다.

야만인이란 <일문부지(一文不知)>라는 것일텐데,

상행보살(上行菩薩)이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일문부지일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석존도 또한 일문부지일 것입니다.

구원실성의 석존도 일문부지의 대표자인 것입니다.

 

아마,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라는 부처님도 일문부지의  부처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참다운 부처님이라는 것은 일문부지인 것입니다.

일문부지라는 것은 대승불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일체공(一切空)이라고 말하는 데,공이라는 것은 일문부지라는 것일 것입니다.

 

깨달음을 연다고 하는 것은 자기는 현명하다고 하는 생각이

본래의 일문부지라는 곳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잔꾀라는 것이 모두 없어져 버린다는 그것이

곧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는 것이며,아미타의 본원(本願)이라는 것입니다.」

(『법장보살(法藏菩薩)』)

 

증아양심 선생이 말한 것은 얼핏보면 기이하게 보이겠지만,

그 취지는 이제 여기에서 고찰할려고 하는 「방편품」의

서두의 문제와 같은 부분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석존 이전에 불법이 있었다"고 하는 것 같은 대담한 발상이 설해져 있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움찔하는 것이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이미 석존 자신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의 한 구절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수풀 가운데를 방황하고 걷고 있던 중에,

옛 사람이 걸었던 옛 길,옛 적의 오랜 좁은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더듬어 가는 중에,옛 사람이 살고 있었던 옛 성시(城市)를 발견하고

거기에 수풀과 정원이 있고,아름다운 제방이 있고,

연못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은 왕 혹은 왕의 신하에게 보고한다.

그리하여 왕 혹은 신하는 거기에 성시(城市)를 재건하고,

그 후 그 성시가 번영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번성을 극하게 된다.

과거의 부처님들이 더듬었던 옛 적 오랜 길이란 무엇일까.

그야말로 성(聖)스런 여러가지의 도(道)이다.」

 

곧 석존이 출현하기 이전에 과거의 부처님이 존재하고 있어서,

성스런 여러가지 도(八正道)가 설하여졌었다는 것이다.

석존은 단지 그 과거의 부처님이 더듬었던 오랜 길을 발견하고,

가르쳤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스스로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 "석존 이전에 불법이 있었다"고 하는 방식도 그만큼 과격한 말이 아닌 것이 된다.

"옛 사람도 모두 이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고 말하여도 틀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단지,증아양심 선생은 그 과거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정도>에 한하지 않고,

'근원적인 생명의 움직임을'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 '근원적인 생명의 움직임'을 일문부지(一文不知)라든가

<일체공> 혹은 <제법실상>이나 <아미타의 본원>이라고 표현했을 뿐인 것이다. 

 

 【생명의 연꽃-법화경의 세계/기야일의(紀野一義) 著】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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