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와 글

가을 / 허난설헌

고양도깨비 2007. 5. 29. 00:15

 

 

가   

 

                                    허난설헌(許蘭雪軒)

 

 

 

 

소슬한 찬 기운 스며드는

 

 

가을 밤은 길어

 

 

밤은 고요히 깊어만 가는데

 

 

이슬 맺는 텅 빈 뜰악

 

 

구슬 병풍은 차가와라

 

 

연못에 연꽃은 시들어져

 

 

이 밤 향기사 흩날려라

 

 

 

우물 가에 오동나무 잎새는 지고

 

 

가을은 그림자도 없는데

 

 

똑닥똑닥 물 시계 소리만

 

 

하늬 바람에 울려 오고

 

 

서릿발 치는 발 밖엔

 

 

밤 벌레들이 구슬피 울어라

 

 

 

 

금 가위로 삭둑삭둑

 

 

베틀에 감긴 비단 자르고나서

 

 

옥문관(玉門關)에 수자리 떠나가신

 

 

님 그리는 애뜻한 꿈 깨고 나면

 

 

비단 장막은 휑하니

 

 

텅비어 쓸쓸해라

 

 

 

멀리 가는 인편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기에

 

 

님의 겨울 옷 부칠려고 마르노라면

 

 

슬픈 등잔불만 어두운 방 벽을

 

 

쓸쓸히 밝혀 주어요

 

 

 

울음을 삼키며 눈물로

 

 

밤새워 애뜻한 사연들을

 

 

얼룩진 편지에 써 놓고 나니

 

 

역사(驛使)는 내일 아침

 

 

남맥(南陌)을 떠난다해요

 

 

 

옷 다 지어 개고

 

 

편지를 정성껏 봉하고 나서

 

 

뜰악에 내려가 홀로 거니노라면

 

 

흐르는 밝은 은하수는 지새려해요

 

 

 

찬 이불 끌어 안고 딩굴며

 

 

님 그려 잠 못이루는 밤

 

 

지는 달님은 정다웁게

 

 

병풍 두른 새악씨 방을

 

 

살며시 엿보아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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