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불교 이야기

조신의 꿈

고양도깨비 2007. 3. 29. 15:52

조신의 꿈

<양양·낙산사>

강원도 명주 땅에 서라벌 세달사의 장사가 있었는데 그

 

곳 관리인 조신 스님은 20세를 갓 넘긴 젊은 스님이었

 

다.

 

어느 날 낙산사 관세음보살 앞에 나아가 정진하던 조신

 

스님은 그만 멍청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

 

어 다시 염불정진을 하려 해도 가슴만 뛸 뿐 마음의 평

 

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스님은 여느 때와 달리 아침 저녁으로 낙산사에 올랐다.

 

그러나 기도보다는 태수의 딸을 먼발치서나마 바라보는

 

기쁨이 더 컸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던 날. 조신 스님은

 

낙산사에 다시 왔으나 낭자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기

 

도를 마치고 떠난 것이었다.

 

 

침식ㅇ르 잃을 정도로 사모의 정에 빠진 조신 스님은 그

 

날부터 산사 관음보살님께 낭자와 혼인할 수 있기를 간

 

곡히 기원했다.

 

 

『관세음보살님! 소승 출가한 신분으로 욕심을 내었으

 

므로 다음 생에 축생이 도리지언정 금생에 꼭 김태수의

 

딸과 연분을 맺고 싶사옵니다. 소승의 소원을 이루게 하

 

여 주옵소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조신 스님이 애태우며 기도하는 가운데 무심한 세월은

 

수 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낭자는 혼인을 약속한

 

준수하면서도 늠름한 한 청년과 함께 낙산사 부처님께

 

인사드리러 왔다.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이 모습을 목격

 

한 조신 스님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조신은 해가 저물도록 관음상 앞에 앉아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관세음보살을 원망하면서 하루만이라도

 

낭자와 좋은 인연이 맺어지길 간곡히 발원했다.

 

 

어느덧 밤은 깊어 파도소리와 솔바람소리만 들릴 뿐 주

 

위는 적막한데, 울며 기도하던 조신은 그만 법당 안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조신은 문득 인기척을 느껴 둘레를 돌아보니 언제 왔는

 

지 꿈 속에서도 그리던 낭자가 바로 옆에 와 있었다. 스

 

님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스님, 죄송합니다. 기도에 방해가 되실 줄 아오나 스

 

님을 잠시 뵈온 이래 하루도 잊을 길이 없어 몰래 빠져

 

나왔사오니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세요.』

 

 

『사모의 정으로 말한다면 소승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

 

러나 아가씨는 이미 정혼한 몸 아닙니까?』

 

 

『부모의 명을 거역 못해 억지로 정한 혼사입니다 .이렇

 

게 밤중에 스님을 찾아왔사오니 속히 이 몸을 데리고 어

 

디로 가주세요.』

 

 

『어디로요?』

 

 

『어디로든 스님과 제가 단둘이만 살 수 있는 곳으로

 

요.』

 

 

정녕 애타는 듯 발을 구르는 낭자를 보는 조신은 기뻐

 

어쩔 줄 몰라 관음보살을 향해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소원을 이렇게 들어

 

주시다니….』

 

 

조신은 낭자와 함께 남의 눈을 피하느라 산 속 길이 걷

 

고 칡뿌리로 요기를 하며 향리로 돌아갔다.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은 비록 벽뿐인 집에서 입에 풀칠하기 바빴으

 

나 내외의 금실은 더없이 좋았다. 그렇게 40년을 사는

 

동안 조신 내외는 슬하에 5남매를 두었다. 아이들이 커

 

가매 내외는 좀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초야를 두루 돌

 

아다니게 되었다.

 

 

때마침 명주 해현령을 지나는데 15세된 큰아들이 이름

 

모를 열병과 배고픔을 못이겨 그만 죽고 말았다. 조신

 

내외는 통곡을 하며 양지바른 산등성이에 아들을 묻고

 

는 다시 길을 떠났다. 익현에 이르러 이들은 초가집을

 

짓고 정착했다.

 

 

그러나 설상가상이라더니 가난한 조신 내외는 병을 얻

 

게 돼 열두 살 된 딸아이가 밥을 얻어다 여섯 식구가 연

 

명해야 하는 눈물겨운 살림에 봉착했다.

 

 

어느 날 딸아이가 마을 개에게 물려 다리를 절룩거리며

 

돌아와 몸져 눕게 되자 조신의 아내는 목이 메어 흐느껴

 

울었다. 슬피 울던 조신의 아내는 무슨 결심이나 한 듯

 

입을 열었다.

 

 

『여보, 이제 우리 헤어집시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사모의 정이 깊어 어떤

 

고생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지요. 그로 인해 5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두터운 인연을 맺게 됐으나 이제 늙고 병

 

들고 가난에 쪼들려 아이들을 추위와 굶주림에서 구하

 

지 못하다 보니 지난 세월이 그저 무상하기만 합니다.

 

형색좋던 얼굴과 예쁜 웃음도 풀위의 이슬처럼 사라지

 

고 지란(芝蘭)같은 백년가약도 버들가지가 바람에 날아

 

간 듯 없어져 버렸으니 당신은 나 때문에 괴롭고, 나도

 

또한 당신 때문에 근심을 하게 되는군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지난날의 기쁨이 바로 우환의 터전이었어요. 만나

 

고 헤어짐이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오니 제발 지금이

 

라도 헤어집시다.』

 

 

이 말을 들은 조신은 같은 생각이었는지 크게 기뻐하며

 

 자리에서 아이를 둘씩 나누고 헤어졌다.

 

 

『저는 고향으로 갈 터이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

 

오.』

 

 

부인의 말을 듣고 막 작별을 하려는데 조신은 그만 꿈에

 

서 깨어났다.

 

 

날은 거의 다 밝았는데 법당 안에는 등잔불만 깜빡이고

 

있었다. 조신은 한 생을 다 살은 듯 세상사가 싫어지고

 

망연할 뿐이었다. 탐욕의 마음도 그리움도 눈 녹듯 깨끗

 

이 녹아 버리고 말았다. 앞에 앉아 계신 관세음보살 뵙

 

기가 면구스럽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날이 밝자 조신은 해현령에 가서 꿈에 아들을 묻었던 곳

 

을 파 보았다.

 

 

그곳에선 돌 미륵불이 출현했다. 조신은 삼배를 한 후

 

물로 말끔히 씻어 부근의 절에 모셨다. 그 후 조신은 장

 

사의 소임을 그만두고 서라벌에 돌아가 사재를 털어 정

 

토사를 세우고 수행에 전념하여 낙산사성중의 한 스님

 

인 조신대사가 되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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