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5대총림선풍을찾아]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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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조계종에는 5대 총림이 있다. 총림이 되기 위해서는 부처의 마음을 찾는 선원(선방), 부처의 말
씀을 배우는 강원(승가대학), 부처의 행동을 익히는 율원(계율 교육기관)을 두루 갖춰야 한다. 5대 총
림은 가풍도 다르다. 해인사는 활달하고, 송광사는 엄격하고, 통도사는 유연하다. 또 수덕사의 선농
(禪農)일치 가풍, 백양사의 임제 선풍(禪風)도 개성이 넘친다. 그야말로 '5인5색'이다. 한국 불교 5대
총림, 그 숨쉬는 5색 선풍을 들여다 봤다.
스님들 사이에선 '염불제'란 말이 있다. 판소리의 동편제와 서편제처럼 말이다. 해인사의 염불은 괄괄
하고 동(動)적이라 '동편제'라 하고, 송광사의 염불은 차분하고 정(靜)적이라 '서편제'라 한다. 하긴
선(禪)의 세계는 '오고 감'이 없다 하니 '정중동(靜中動)'도 맞고, '동중정(動中靜)'도 맞을 터이다.
지난달 22일, '괄괄하고 활달하다'는 경남 합천 해인사를 찾았다. 일주문을 지나자 봉황문, 그 다음에
해탈문이 나타났다. 가파른 오르막에 높다란 계단의 연속이다. 숨이 턱턱 찬다. 그만큼 해인사의 산세
는 거칠다. 스님들은 "산세가 '행주(行舟.거친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배)'형국"이라 한다. 가야산 기질
을 해인사가 닮고, 해인사 기질을 스님들이 닮았나 보다. 해인사의 선풍은 한 마디로 '터프'하다.
해인사 박물관장 본해 스님은 "해인사는 주인이 따로 없다. 출신 문중보다 수행하는 스님이 주인"이라
고 말했다. 아무리 차분한 스님도 일주문만 들어서면 괄괄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문중 스님들도
해인사에만 오면 목소리가 커진다. 선(禪)을 향해 달리는 거침없는 각오, 해인사에선 그걸 가장 중시
하기 때문이지 싶다. 그래서 열려 있고, 그래서 또 격렬하다. 깨치기 위한 깨짐, 깨지기 위한 부딪힘,
부딪히기 위한 내달림. 해인사에만 들어서면 그게 꿈틀댄다.
궁금했다. 해인사의 선방은 어떨까. 성철 스님(6.7대 종정)과 혜암 스님(10대 종정), 법전 스님(11대
현 종정)을 배출한 게 해인사 선방이다. 100여 명의 재가불자들이 수행 중인 원당암으로 갔다. 계곡
에 다리가 놓여 있다. 이름이 '무생교(無生橋)'. 태어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것이 없으면 죽음
도 없다. 남과 죽음, 양변을 여읜 자리 거기에 참된 이치가 드러난다. 원당암에 가려면 "남(生)이 없는
다리" 를 건너야만 했다.
'유나'는 총림의 중요한 소임이다. 선방의 수장을 뜻한다. 해인사 유나인 원각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유나'는 총림의 중요한 소임이다. 선방의 수장을 뜻한다. 해인사 유나인 원각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자리에 없었다. 선약도 없이 방에서 기다렸다. 땅거미가 지고서야 방문이 열렸다. 원각스님이 들어왔
다.
차를 따르는 스님께 물었다. "해인사의 선풍은 무엇입니까?" 스님은 한마디만 던졌다. "용.맹.정.진."
성철스님 계실 때부터 내려오던 가풍이다. 동안거와 하안거, 그중 1주일씩 낮 밤으로 잠을 안자고 수
성철스님 계실 때부터 내려오던 가풍이다. 동안거와 하안거, 그중 1주일씩 낮 밤으로 잠을 안자고 수
행에 들어간다. 물론 쉽진 않다. "어느해 겨울 현당 큰방에서 용맹전진하는 도중 포행(걸으며 하는 수
행) 돌 때 잠에 취해 방 가운데 있는 기둥을 들이받는 스님들도 더러 있었죠. 그만큼 힘이 들지만 애써
서 하는데서 까닭이 생깁니다."
그리도 힘들게 화두를 챙겨야 하는 이유는 뭘까? "공안을 타파하고, 어쨌든지 이 도리를 깨달아야 인
생문제가 해결됩니다. 선과 악, 유와 무, 양변을 여읜 근본바탕에 생활해야 하죠. 그럼 종일 가도 가는
바가 없고, 종일 먹어도 먹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49년 동안 설법하고도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 잘나고 못남, 높고 낮음. 이 모든 상대적 개념이 빚어진 이유는 뭘까?
바로 '나' 가 있어서다. '나'가 없으면 본래가 드러나고 그래서 그곳은 구분과 대칭이 불가능한 자리가
된다. 원각스님은 "김 아무개, 박 아무개로만 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에너지가 질량이 되고, 질량이
에너지가 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무아의 당처, 본래심에서 생활해야 활
발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밤 9시, 원당암을 나섰다. 사방이 캄캄하고 적막했다. 해인사 안의 방문객 숙소인 '화림원'으로 갔다.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바깥 화장실로 갔다. 소변기 위에 네모난 종이가 붙어 있었다. '進一步(진일
보)'. '백척간두진일보(백척 낭떠러지 위에서 한 발 앞으로 내딛는다)'의 비장함이 여기선 유머(한 발
짝 더 소변기 앞으로 오세요)로 녹아 있었다. 어찌 보면 우습고, 어찌 보면 머리칼이 쭈뼛 선다. 볼일
을 볼 때조차 죽을 각오로 붙드는 화두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새벽 3시, 종이 울렸다. 기상 시간이다. 하늘에선 밤 별들이 뚝뚝 떨어졌다. 새벽 어둠을 헤치며 스님
들이 대적광전(주법당)으로 들었다. 40여 명의 신도들도 법당 뒷자리에 섰다. 해인사 경내에 '반야심
경'이 울려 퍼졌다. 그제야 실감했다. 해인사의 염불은 박력이 넘쳤다. '단박에 깨침'을 외치던 그 패
기가 '두리둥둥둥'하는 동편제의 북소리와 무척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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