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화와역사/문화재 및 국보

국보 217호 / 금강전도

고양도깨비 2007. 3. 10. 01:23
금강전도 []
 
종   목   국보   217호
명   칭   금강전도
  (金剛全圖)
분   류   산수화
수   량   1축
지정일   1984.08.06
소재지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시   대   조선 영조
소유자   이건희
관리자   호암미술관


조선 후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실제로 보고 그리는 실경산수화풍을 연 겸재 정선(1676∼1759)이 영조 10년(1734)에 내금강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실제 보면서 수묵담채로 그렸으며 크기는 가로 59㎝, 세로 130.7㎝이다. 전체적으로 원형구도를 이루고 있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모습이다. 눈덮인 봉우리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긋는 수직준법을 이용하여 거칠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표현하였고, 이와 함께 위쪽에는 비로봉이 우뚝 솟아 있으며, 화면 중심으로는 만폭동 계곡이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르고 있다. 바위로 이루어진 메마른 느낌의 봉우리들과는 대조적으로 왼편에는 무성한 숲을 이룬 부드러운 토산이 놓여 있는데, 이는 붓을 옆으로 눕혀 점을 찍는 방식으로 나타내었다. 화면의 윗부분에는 그림의 제목과 함께 작가의 호, 그림에 대한 감상 등이 적혀 있다.

당시의 산수화는 주로 중국 산수화를 보고 그린 것인데 반해 이 그림은 직접 우리나라의 실경를 보고 그린 것으로 정선이 그린 금강산그림 가운데에서도 가장 크고, 그의 진경산수화풍이 잘 드러난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명   금강전도(金剛全圖)

조선시대회화사상(朝鮮時代繪畵史上), 후기(後期)의 화단에 속하는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이 그린 금강산(金剛山) 그림인데, 겸재(謙齋)가 그린 60여 점의 금강산 그림 가운데에서도 가장 크고, 또 그의 화법(畵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걸작이다.

이 그림은 그가 59세 때인 1734년(영조(英祖) 10년)에 그렸는데, 장년(壯年)의 필력(筆力)과 화기(畵技)가 특출한 작품이다.

종이에 수묵(水墨)과 담채(淡彩)로 그렸고, 조감식(鳥瞰式) 구도를 써 비로봉(毘盧峰)을 위시하여 외금강(外金剛) 만물상(萬物相)의 연봉(連峰)을 수직평행
준법(垂直平行준法)으로 빽빽이 그려 넣고, 왼편에 치우쳐 겸재(謙齋) 특유의 미점준법(米點준法)을 써서 그린 나무숲이 잘 조화되어 있다.

「갑인동제(甲寅冬題)」라는 기년명(紀年銘)이 있고, 칠언율시(七言律詩)의 찬시(贊詩)도 매우 좋다.

족자(簇子)로 되어 있는데 보존상태도 매우 좋다.
 
 
 
1984년 8월 6일 국보 제217호로 지정되었다. 지본담채()이며 크기는 가로 59㎝, 세로 130.7㎝이다. 경기도 용인시 포곡면 가실리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금강내산()을 부감형식()의 원형구도로 그린 진경산수()이다.

왼편에는 윤택한 토산들을 배치하고, 오른편에는 수직준(皴  )으로 정의된 수많은 첨봉()의 바위산을 그려넣었다. 바위산에 보이는 수직준들은 대개 강하고 활달하며 예리한 데 비해, 토산에 보이는 준법(皴  )과 미점()들은 습윤하고 부드럽다. 부감법으로 홍문교()로부터 1만 2천 봉을 집결시켜서 그리는 화법은 겸재 이후 크게 유행하였는데, 그것이 겸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에도 있었던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금강전도》에 나타난 필법은 거센 필선으로 중첩()한 무수한 봉골()을 죽죽 그려내린 것으로, 금강산과 같은 골산()에 알맞다. 이 점에서도 겸재의 천재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골법을 써서 중봉()을 그리거나 산세를 묘사할 때는, 화면 전면을 꽉 채우거나 중앙으로 몰아 집중적으로 그리는 두 가지의 독특한 구도를 채택한다. 이 점은 중묵암산()의 화법 때의 구도와는 아주 다른 것으로 지도제작법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