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화와역사/문화재 및 국보

고려청자가가을빛이네요.

고양도깨비 2006. 12. 13. 21:01

    청자상감 용봉모란문 개합 ▶ 
    

    어제 아침 신문을 보니, 고려시대 귀족의 밥그릇이었던 “청자상감 용봉모란문 개합”이 복제 제작돼서 APEC 정상회의 만찬에 식기로 올려진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우아한 그릇에 밥을 담아 먹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눈썹을 찡그렸습니다. “눈부시게 파란 가을하늘 빛깔을 담은 우리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세계인에게 알릴 기회라는 제작자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죠... “고려청자의 빛깔은 우리나라 가을하늘과 같은 빛깔”이라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지만 들을 때마다 "도대체 뭐가 같다는 거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거든요.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고려청자의 빛깔들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빛깔은 아래 사자 장식 향로나 여자아이 모양의 연적에서 볼 수 있는 약간 어두우면서도 맑은 비취색이랍니다. 흙먼지 속에서 발견된 오래된 곡옥이나 이끼가 낀 고색창연한 연못의 물이 이런 그윽하고 신비로운 빛깔을 띠곤 하죠. 하지만 가을 하늘이 이런 색깔 띠는 것은 본 적이 없는데요. 드높은 가을하늘의 투명한 파란색은 물론 아름답지만 말입니다.


청자사자장식향로



청자동녀형연적



용문사

    그리고 아래 청자 매병의 빛깔은 더 밝고 투명한 비취색입니다. 마치 봄의 바닷물 같은 색깔이에요. 그 아래에 있는 사랑스러운 청자 분합의 색깔은 갈색이 도는 녹색이고요. 그 아래에 있는 청자 투각 향로는 청회색이 많이 감돕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가을하늘의 색깔은 아닙니다.


청자음각연화당초문매병



청자동화퇴화국화문합



청자투각칠보문향 


용문사 은행나무


    월탄 박종화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담긴 “청자부”라는 시가 있습니다.

        빛깔, 오호! 빛깔
        살포시 음영(陰影)을 던진 갸륵한 빛깔아.
        조촐하고 깨끗한 비취(琵翠)여.
        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
        물방울 뚝뚝 서리어
        곧 흰 구름장 이는 듯하다.
        그러나, 오호 이것은
        천년 묵은 고려 청자기

    저는 이 분이 도대체 어느 청자를 보고 이 시를 지었는지 미스테리입니다... -_- 비온 뒤 구름 사이로 드러난 파란 하늘 한 조각 같은 색의 청자가 있었나요? 그런 색깔의 머그컵을 본 적은 있지만요 (그 색깔이 엄청나게 튀더군요.) 그런 색깔은 하늘에 있을 때는 곱지만 청자에 내려앉은 순간에는 청자의 신비로움과 기품을 모조리 날려버릴 겁니다. 저 위에 소개한 고려청자들이 저 사진에 나오는 것 같은 파란색이라고 생각해보세요...-_-;;

    고려청자의 빛깔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왜 굳이 청자의 빛깔을 가을하늘에 비유해서 그 이미지에 혼란을 가져오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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