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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文宗)과 현덕왕후(顯德王后) - 현릉(顯陵)

고양도깨비 2010. 9. 1. 08:45

 

제5대 문종(文宗)과 현덕왕후(顯德王后) - 현릉(顯陵)

 

현릉 - 문종

 

 - 소재지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 <東九陵 소재>
 - 사 적 : 제 193 호

 

 - 顯陵의 특징 


 : 문종(이향(李珦):1414-1452, 재위 2년)과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 權氏:1418-1441)의 현릉은 홍살문(紅--門)부터 모든 부속시설은 하나씩만 설치되어 있고 좌우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封墳)을 따로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종의 릉은 웅장하게 봉분에 병풍석(屛風石)까지 두르고 있지만, 현덕왕후릉은 다소 치우쳐 보입니다.
현릉 - 현덕왕후를그 이유는 본래 현덕왕후가 세자빈 때(1441년: 세종23년) 단종(端宗)을 출산하고 승하해서 문종(文宗) 즉위년[1450년]에 현덕왕후로 추숭되어 소릉(昭陵)으로 명명되었다가 단종 즉위년[1452년]에 문종과 합장(合葬)되면서 합장릉으로 현릉(顯陵)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조(世祖) 3년[1457년]에 현덕왕후의 집안이 동생이 단종의 복위사건에 연루되어 현덕왕후의 능이 파헤쳐져 세가로 옮겨졌다가 중종(中宗) 8년[1513년]에 복위되어 다시 동원이강릉의 형태를 이루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 文宗代의 사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1451

1년

6월, 새로운 진법(陣法)을 찬함

1452

2년

2월, 세종실록 편찬 시작

5월, 문종 승하{1414- }, 세자 단종 즉위

 

- 뒷 이야기


: 37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문종은 20여년간의 세자(世子) 생활로 정치력은 우수했으나 평소 몸이 허약했기에 재위 2년 4개월만에 승하하게 됩니다. 이에 어린 세자 단종이 왕위에 오르게 됨으로써 '계유정란(癸酉靖亂 :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죽이고, 안평대군을 강화에 압치하고 군부를 장악함)'과 세조의 찬위(簒位), 사육신(死六臣) 사건 등을 초래하게 됩니다.
 짧은 재위 기간이었지만 문종 대는 병법서(兵法書)인 <동국병감(東國兵鑑)> 등을 간행하고 <고려사(高麗史)> 등을 편찬하는 등의 작업과 함께 서울의 도성(都城)을 비롯한 각 도의 주요 읍성(邑城)들을 개축(改築)하는 등의 치적을 올립니다.

 생전과 사후 모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단명(短命)한 비운의 왕비 현덕왕후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집안인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전(權專)의 딸로 태어나 슬하에 단종과 경혜공주를 두었지만, 세자빈 책봉 4년만에 승하해 현덕(顯德)의 시호(諡號)를 내렸고 문종 즉위 후 왕후에 추숭(追崇)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