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화와역사/역사 바로알기

북 부여의 역사

고양도깨비 2007. 3. 28. 00:44

 


• 북부여 역대 임금


전북부여

① 해모수 단군   BCE 239~

② 모수리 단군   BCE 194~

③ 고해사 단군   BCE 169~

④ 고우루 단군   BCE 120~BCE 87년


후북부여

⑤ 고두막 단군  BCE 108년 동명왕으로 즉위 BCE 87~ 북부여 계승

⑥ 고무서 단군  BCE 59년 이듬해 고주몽에게 양위


※동명과 주몽

동명(東明)은 ‘동방의 광명(밝음)’이라는 뜻이다. 47세 단군 고열가의 후예인 고두막한이 세운 나라로(《북부여기》하) ‘동명부여’라고도 한다. 또는 인물로서의 동명왕 고두막한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동명을 고주몽이라 했으나, 동명과 고주몽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동명왕 고두막한의 북부여 후기시대를 이어 고구려를 세운 인물이 고주몽이다.(이 점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중간시대에 해당하는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를 찾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므로 철저히 알아두어야 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기존 역사서에서 주몽을 동명왕으로 지칭한 것은 주몽이 동명왕 칭호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고구려 연개소문 아들인 연남산(淵男産) 묘지(墓誌)의 “옛날에 동명은 기운에 감응되어 표천(淲川)을 넘어 나라를 열었고, 주몽은 광명으로 잉태되어 패수에 임하여 도읍을 열었다(昔者, 東明感氣, 踰淲川而啓國, 朱蒙孕日, 臨浿水而開都).”라는 기록이 말해주듯이 동명과 주몽은 명백히 다른 인물이다.

 

  원문에 “칭국동명(稱國東明)”은 “잉칭북부여(仍稱北夫餘)”의 오기(誤記)이다. 동명부여는 원래 고두막한이 졸본(卒本)에서 동명왕으로 즉위할 당시에 정한 국호로 동명부여는 졸본부여라고도 한다. 《북부여기》에는 동명왕 고두막한이 고우루 단군의 북부여를 계승한 뒤에는 나라 이름을 북부여라 했다고 전한다.

  고두막 단군이 세상을 뜨자 태자 고무서가 즉위하여 도읍을 다시 졸본으로 옮겼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구려가 동명제의 졸본부여를 계승한 나라임을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는 주몽에 의해 처음 창업된 나라가 아니라 재건국된 나라다. 주몽의고구려 이전 시대에 원시 고구려(고리국(槀離國))가 있었다는 사실은 본서 뿐 아니라 《후한서(後漢書)》, 《논형(論衡)》, 《양서(梁書)》, 《위략(魏略)》 등 수많은 문헌에서 밝히는 사실이다.

  특히 북애자의 《규원사화(揆園史話)》에 의하면 초대 단군 성조께서 둘째 아들 부소(夫蘇)에게 서쪽 땅의 구려를 다스리게 한 것처럼 원래 단군조 이래로 고조선의 제후국이었다.

 

  훗날 우거를 멸하고 이어 북부여를 침략한 한 무제가 한때 원시 고구려의 일부 지역을 점거하고 현으로 삼으려했는데 후세 중국 역사가들이 후한시대 반고(班固: 32∼92)가 편찬한 《한서(漢書)》〈지리지〉에 나오는 현도군 고구려현을 근거로 고구려가 마치 현도군에서 나온 것처럼 왜곡하고 고구려사 전체를 빼앗으려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수(隋)·당(唐)시대 때 수 문제, 당 고조 등을 설득하여 고구려 침공을 부추긴 배구(裵矩: 557-627)이다. 그의 사관은 당대 뿐 아니라 후대 중국 사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오늘날 동북공정의 기본 논리로까지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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