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중국 상하이(上海) 중심가 후이하이(匯海)로에 있는 샹양(襄陽)시장.
진품(眞品)을 가장한 모조품인 ‘짝퉁’의 천국이다. 상하이에서 가장 큰 짝퉁시장이다.
시장 입구에는 붉은 천에 한문과 영문으로 ‘지적재산권 보호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고 쓴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장 안에는 2, 3평 크기의 점포 80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점포마다 상품을 빼곡하게 쌓아 놓은 모습이 서울의 남대문시장을 빼닮았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10곳의 출입구에는 ‘샤넬 구찌 등 명품(名品) 브랜드를 판매하거나, 파는 것을 방관하면 처벌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하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방 및 시계 짝퉁 전문점을 운영하는 현지인 장후아 씨는 관광객들에게 “어떤 명품 브랜드도 정상 가격의 10분의 1 가격으로 살 수 있다”며 부추겼다.
조선족 현지 관광가이드 김모 씨는 “얼마 전까지 유럽 명품 짝퉁이 많았으나 최근 한류(韓流) 바람으로 한국 상품을 찾는 중국인과 동남아시아인들이 늘면서 한국 상품 짝퉁이 급증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양해지는 한국제품 짝퉁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에어컨 담배 맥주 티셔츠….’
최근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제품 짝퉁 목록이다. 최첨단 정보기술(IT) 관련 제품에서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한국제품을 모방하는 짝퉁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날 샹양시장에서도 한국산 휴대전화와 DVD 짝퉁을 찾는 중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중국에서 명품으로 대접받는 삼성전자 애니콜 휴대전화와 LG전자 에어컨은 중국산 짝퉁으로 매출감소와 이미지 추락 등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LG전자는 올 4월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지역에 있는 에어컨 짝퉁 생산업체에 대한 제보를 받고, 한 달 동안 자체 조사를 벌여 중국 경찰에 신고했다.
이런 식으로 LG전자가 적발한 상표권 도용 건수는 2003년 6건, 2004년 8건에 이어 작년에는 무려 26건으로 늘어났다.
상하이에서 3년째 살고 있는 천병기 신세계 이마트 인두(銀都)점장은 “요즘엔 짝퉁 한국산 담배를 술집이나 음식점, 일반 소매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피해가 더 커
중국산 짝퉁은 그동안 중국과 홍콩 등에서 많이 팔렸지만 최근엔 한국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판매 지역이 확대되고 있어 짝퉁으로 인한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커피업체 동서식품은 작년 하반기부터 지방의 중소도시 재래시장에서 1회용 커피 ‘맥심 모카골드’의 짝퉁 제품이 3분의 1 값에 팔리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제품은 중국에서 제조된 커피를 국내로 들여와 포장 판매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옥션 G마켓 등 인터넷 ‘e마켓 플레이스’에서 ‘애스크’ ‘베이직하우스’ 등 중저가(中 低價) 캐주얼 의류 짝퉁이 정품의 20∼50% 수준에 팔려 해당업체들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캐주얼 의류업체들은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짝퉁들은 대부분 중국산으로 보고 있다.
베이직하우스를 홍보하는 서영진 씨는 “소비자들은 중저가 의류에도 짝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짝퉁 의류를 산다”며 “이런 짝퉁 때문에 제품 이미지가 나빠지면 중저가 의류업체는 커보지도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뾰족한 대책 없어 발만 동동
커피 담배 맥주 짝퉁은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
올 3월 국내에서 처음 적발된 중국산 짝퉁 담배 중에는 국산 정품 담배보다 타르와 니코틴 함량이 최대 9배 이상 많은 것도 있었다.
KT&G 박원락 과장은 “짝퉁 담배는 가래와 가슴통증, 현기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품 제조업체들은 짝퉁 유통이 갈수록 늘어나는데도 뾰족한 대책이 없어 속을 태우고 있다.
짝퉁 단속 전문업체 ‘대상정보’의 정태은 사장은 “짝퉁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과정은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 제조회사들이 적발해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중국산 짝퉁은 동대문 남대문시장에서 대규모로 거래돼 적발하기가 쉬웠지만, 최근 들어서는 점조직 형태로 판매돼 단속이 어렵다는 것이다.